
'Learning without limits(한계 없는 학습).' 런던의 유서 깊은 풍경과 대조적으로 'Bett UK 2026' 전시장은 미래 교육의 방향을 둘러싼 논의가 밀도 높게 이어진 현장이었다. 올해 전시회에는 130여 개국에서 약 3만 7천 명의 교육 관계자와 70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실제 학교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디지털 교육 사례와 기술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 기술의 전시장 안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가장 인간다운 교육'에 대한 성찰이었다.
한국은 전국적인 인터넷 인프라와 학교 디지털 환경 구축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반면 영국은 개별 학교가 교육과정과 예산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바탕으로, 오래전부터 학교가 자체적으로 학교경영관리시스템을 선택·활용해 왔다. 학생의 출결과 성취,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학교 운영과 교육 개선에 직접 반영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중앙정부와 런던시와 같은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러한 디지털 기반 혁신이 가능하도록 에듀테크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육성하고 있다.
벳쇼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실제 학교에서 검증된 학교 정보관리 시스템, 학습 데이터 분석 솔루션, 학교 리더십 지원 도구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다. 대형 기업은 기술 포트폴리오와 시장 지배력을, 스타트업은 민첩한 아이디어로 틈새 수요를 공략했으며, 중견 기업들은 차별화된 솔루션과 파트너십을 통해 다음 성장 단계를 모색하는 등 교육 기술 시장의 경쟁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올해 벳쇼의 캐치프레이즈는 'Learning without limits'였다. 이는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시간과 공간, 개인의 학습 속도와 수준이라는 제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학습의 가능성이 확장될수록, 올바른 학습의 방향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제기됐다. 전시와 컨퍼런스 전반에서는 데이터 보호, 편향 방지, 학습자 보호를 위한 '세이프가드(safeguard)'의 필요성이 강조됐고, 이를 시스템에 적용한 사례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AI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기술적 성능 못지않게 안전과 책임의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에듀플러스]〈기고〉AI 디지털 교육 혁신, 우리에게 기회는 있는가](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1/29/news-p.v1.20260129.898a0a6ead88478ebbbf7139a4e654f0_P1.png)
'기술이 인간성과 만날 때, 학습은 한계가 없어진다(When technology meets humanity, learning becomes limitless)'라는 문구 역시 인상적이었다. 학습의 효율과 자동화가 강조될수록 공감, 판단, 책임과 같은 인간 고유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진다는 인식이 공유됐고, 교육에서의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완하고 강화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제시됐다.
한편 과거처럼 눈에 띄는 혁신이 드물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AI의 성능이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조차 상대적으로 평이하게 느껴졌다. 스타트업들은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담은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대규모 인프라를 전제로 발전하는 AI 시장의 특성상 이들이 독자적으로 대형 기업으로 성장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아이디어는 거대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흡수·확장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AI는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맞춤형 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확인했듯이, 수업 설계에 AI를 결합할 경우 짧은 입력만으로도 높은 완성도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사 개인의 수업 철학과 설계 성향까지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앞으로는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중심으로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려던 시도를 넘어, 교사의 수업 설계 데이터와 특성을 반영한 '교사 맞춤형 수업 설계 지원'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은 K-AI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을 통해 AI 3대 강국을 목표로 가속하고 있다. 기술력 자체는 더 이상 뒤처진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AI와 결합 될 학습 데이터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해 거대한 국가 시스템 안에 묶여 있다는 점,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 도입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는 현실은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이다. 이제 AI 디지털 교육의 가능성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이 놓이는 환경과 구조에 달려 있다.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때, AI는 혁신이 아니라 교육의 일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기현 테크빌교육 에듀테크부문 대표 key@tekvil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