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자동차 기업이 글로벌 전기차(EV) 및 e모빌리티 시장에서 '추격자'를 넘어 '시장 지배자'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역량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생태계 장악력'과 '원가 경쟁력의 구조적 혁신'입니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원장은 글로벌 전기차·e모빌리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국내 자동차 기업이 갖춰야 할 역량을 이렇게 요약했다. 동시에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중국 기업들이 '압도적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은 샌드위치 위기론을 넘어설 수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오는 3월 24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되는 '제 13회 국제e모빌리티 엑스포'를 앞두고 성공적 행사를 위한 공동조직위원장 릴레이 인터뷰를 5회에 걸쳐 게재한다.
-자동차 기업이 글로벌 전기차·e모빌리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라 보나.
△기존 원가 절감 방식으로 중국 기업(BYD 등)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제조 방식과 공급망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고성능 NCM(삼원계) 배터리에만 의존하지 말고,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양산 능력을 확보해 중저가 시장 방어력을 높여야 한다. 흑연 등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해 지정학적 리스크(미국 IRA 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급망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레벨 2~2.5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레벨 3+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상용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AI'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복잡한 한국의 도심 환경에서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임으로써, 기술 신뢰도(Trust) 면에서 글로벌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해야 한다.
-탄소중립 측면에서 봤을 때 e모빌리티 및 자동차업계가 추진해야 할 우선과제는.
△탄소중립(Net-Zero) 달성을 위해 e모빌리티 및 자동차 업계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히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것'을 넘어선 구조적인 대전환을 의미한다.
이제는 차량의 주행 단계뿐만 아니라,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전 과정 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 관점에서 탄소를 줄여야 한다.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면서 완성차 업체의 직접 배출(Scope 1, 2)보다 부품 소재 생산 과정에서의 간접 배출(Scope 3)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차체 주재료인 철강과 알루미늄을 그린 스틸(수소 환원 제철 등) 및 저탄소 알루미늄으로 대체해야 한다. 또 내장재에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재활용 소재 적용 비율을 높여야 한다. 수천개 부품 협력사가 재생에너지(RE100)를 사용하도록 지원하고,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 데이터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전기차 탄소 배출 약 30~40%는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배터리 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폐배터리에서 추출해 신규 배터리 제조에 투입하는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자원 안보와도 직결된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움직이는 에너지 저장 장치'로 바라봐야 한다. 전력망의 탈탄소화 없이는 전기차의 친환경성도 반감된다.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발전량이 많을 때 전기차에 충전하고, 전력이 부족할 때 다시 전력망으로 송전하는 양방향 충전 기술을 상용화해야 한다. 전력망 부하가 적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시간대에 자동으로 충전되도록 하는 지능형 충전 시스템 보급이 필요하다.
-자율주행이나 모빌리티 플랫폼 같은 소프트웨어·데이터서비스 분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국내 자동차 기업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추격하는 단계다. 단순히 차에 운용체계(OS)를 탑재하는 것을 넘어 '움직이는 스마트폰'처럼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차량의 주행, 인포테인먼트, 안전 기능을 하나로 제어할 수 있는 고도화된 통합 OS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또 차량에서 수집된 방대한 주행 및 사용자 데이터를 단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가공해 보험, 광고, 개인화 서비스 등 새로운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전기차를 단순히 '탈것'으로 보지 않고, 전력망의 일부로 활용하는 에너지 플랫폼 사업자로의 변신이 필요해 보인다. 전기차 배터리에 남은 전력을 전력망에 되파는 V2G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시켜, 고객에게 전기차로 돈을 버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충전소를 단순한 주유소가 아닌 쇼핑·휴식·문화가 결합된 복합 스테이션으로 브랜딩해 테슬라의 슈퍼차저 생태계에 대응해야 한다.
지금은 '잘 만든 전기차'를 파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 돈을 버는 구조를 누가 먼저 완성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글로벌 완성차 및 배터리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협력 전략은 무엇인가.
△국내 완성차 및 배터리 기업들이 거대한 내수사장을 갖고 있는 중국 완성차 및 배터리 업체들과 개별적으로 경쟁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 중국 관세정책은 국내 완성차 및 배터리 기업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회를 활용해 소재, 부품 장비 차원에서 협력을 해야 한다. 흑연 등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소재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국내 기업들이 공동 펀드를 조성해서 해외 공급망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공동구매가 가능한 국내 소재, 부품, 장비업체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국내 완성차 및 배터리 관련 소재, 부품, 장비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협력을 할 수 있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