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민의 디지털 창업사] 〈2〉디지털 창업가의 출현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

인공지능(AI)과 플랫폼이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기술 패권 시대에, 우리가 삼보컴퓨터의 창업자 이용태 회장을 호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의 생애는 자본과 기술이 전무했던 시절에 어떻게 창업가 정신 하나로 첨단기술 국산화를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교본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집에서 한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독학으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1960년대 대학생 시절, '이지흠'이라는 필명으로 수학 참고서를 집필하며 당대 '일타 강사'로 명성을 떨쳤다. 이용태는 미국 유타대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컴퓨터 국산화 프로젝트를 맡게됐다.

1970년대 초 인텔이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출시했을 당시, 그는 이 기술이 기존 선진국들이 장악하고 있던 메인프레임 중심의 질서를 뒤흔들 '파괴적 기술'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당시 대다수의 전산 전문가들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성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며 비웃었으나, 그는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짧은 전환기를 포착한다면 기술적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추격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될 것임을 간파했다. 이러한 그의 혜안은 훗날 우리 정보기술(IT) 산업이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건너뛰고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으로 직행하는 전략적 토대가 되었다.

이용태가 주도하던 국산 컴퓨터 사업이 정부와 대기업의 외면으로 폐기될 위기에 처한 순간, 그는 국책연구소의 연구원 신분을 뒤로하고 창업을 했다. 1980년, 그는 학원 시절 동료들에게 구한 자본금 1000만원과 7명의 기술자들을 이끌고 청계천에서 삼보전자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그는 첨단 기술 사업의 높은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100개의 모험 기업을 세우겠다는 대담한 포트폴리오 전략을 실행에 옮겼는데, 이는 오늘날의 '컴퍼니 빌더' 모델을 구현한 선구적 시도였다.

이용태의 리더십은 1982년 한국데이타통신(DACOM) 사장 취임과 전자정부 사업을 기점으로 국가 인프라 설계 영역으로 확장됐다. 이때 그는 행정 관리를 넘어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정부 역할을 제시하며 국가 프로젝트에 벤처 정신을 이식했다. 특히 정부가 비전과 예산을 수립하고 민간 전문 기관이 실무를 전담하는 민관협력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전자정부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소프트웨어(SW) 영토를 확보하는 '단계 건너뛰기'를 실현했다.

이용태는 인터넷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해 사업 영역을 서비스와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1996년 그는 세계 최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인 두루넷(Thrunet)을 출범시켜 우리나라 회사로서는 처음으로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동시에 글로벌 포털 야후(Yahoo!)와의 합작을 통해 야후코리아를 설립하며 국내 인터넷 포털 시장을 선점했다. 또 글로벌 사업으로서 삼보는 미국 시장에서 초저가 PC 전략을 앞세워 이머신즈(eMachines)를 출범시켰고, 단기간에 미국 소매 시장 점유율 3위권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무리한 외형 확장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글로벌 IT 버블의 붕괴가 맞물리면서 삼보컴퓨터는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벤처 신화의 뼈아픈 퇴장을 기록했다.

경영사적 관점에서 삼보컴퓨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제품이 아닌 사람이었다. 이용태는 “총명한 인재들이 창업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독려하면서도, 그들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으로 지식이나 기술보다 '인성'이 전제돼야 함을 역설했다. 삼보컴퓨터에서 실무 역량을 쌓은 인재들이 훗날 창업 생태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초기 벤처 붐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이 기업이 대한민국 최초의 '벤처 사관학교'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AI가 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또 다른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 앞에 서 있다. 디지털 창업가 이용태의 통찰은, 거대언어모델(LLM) 경쟁 속에서 후발 주자의 전략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의 폐쇄적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개방형 기술을 선택하며 기술 주권을 수호했던 그의 결단은, 독자적인 AI 거버넌스 구축이 절실한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