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해외 송금과 자금 이동이 2조5000억달러(3567조원) 규모까지 커졌다. 단순한 투자 열풍을 넘어, 이제는 국경을 넘는 '실제 돈의 이동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6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국경간 암호화 자산 거래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의 국경간 거래(CBCF) 규모는 약 2조5000억달러로 추정된다. 2021년 급증 이후 2022년 시장 조정을 거쳤지만, 이후 다시 회복세에 진입했다.
특히 최근에는 비트코인보다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USDT·USDC 등) 거래가 더 많이 늘고 있다. 암호화 자산이 투기적 자산을 넘어 실사용 기반의 국제 결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환율 변동성이 높거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큰 신흥국, 해외 송금 수수료가 비싼 나라, 외환 규제가 엄격한 나라 등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디지털 달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달러가 더 빠르고 쉽게 퍼지게 만드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달러처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네트워크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통적 국제 금융 네트워크가 미국·영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면, 암호화 자산 기반 네트워크는 신흥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연결 밀도도 더 분산돼 있다. 이는 국제 자금 흐름의 중심축이 점진적으로 다층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자금 이동이 기존 외환 관리 시스템 밖에서 빠르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경간 자금 이동은 은행을 통해 이뤄졌고, 당국은 이를 기준으로 외환·자본 흐름을 관리해 왔다. 하지만 코인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바로 이동한다. 보고서는 자본통제가 엄격한 환경에서는 암호화 자산이 비공식적 자본 이동 경로로 활용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 변화는 기존 외환·자본거래 관리 체계에 도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은행 기반 결제망을 전제로 설계된 규제·감독 체계만으로는 온체인(블록체인상) 자금 이동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온체인·오프체인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모니터링 체계 정비 필요성을 제기했다.
공공 부문도 대응에 나섰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중앙은행과 민간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아고라'를 통해 도매형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토큰화 예금, 민간 디지털 자산을 하나의 정산 레이어에서 상호 운용하는 구조를 실험 중이다.
'프로젝트 아고라'는 국경간 결제 과정에서 메시지 전달, 통화 교환(FX), 청산·정산을 분리된 절차로 처리하던 기존 구조를 디지털 환경에서 통합·자동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이 같은 공공 디지털 결제 인프라가 도입되더라도, 기존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 거래가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국제 결제 질서는 민간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중앙은행 기반 디지털 정산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상황과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결제 경로가 선택되는 다층적 결제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코인을 규제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국제 디지털 유동성 환경 속에서 원화와 국내 금융기관의 역할을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원·달러 결제를 디지털 방식으로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면, 외환 결제 리스크를 줄이고 국내 금융사의 경쟁력을 높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보고서는 “국경간 토큰화 결제가 본격화될 경우 한국은 아시아 지역 결제 및 유동성 연결망에서 중요한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국제 디지털 유동성 네트워크 속에서 원화의 활용 가능성과 국내 금융기관의 글로벌 역할을 능동적으로 재설계하는 전략적 선택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