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열연강판 반덤핑 판정과 '가격약속', 제조 강국의 근간을 지키는 무역위의 역할

산업통상부 무역위원회는 지난 23일 일본 및 중국산 탄소강 및 그 밖의 합금강 열연제품(이하 열연제품)에 대한 무역구제 조치를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일본산에는 31.58~33.43%, 중국산에는 28.16~33.10%의 덤핑방지관세 부과를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건의하기로 하였다. 동시에 일본 JFE와 중국 바오산 등 총 9개 주요 공급사에 대해서는 자발적인 수출가격 인상을 골자로 하는 '가격약속' 제의를 수락하기로 했다.

열연제품은 자동차, 조선, 건설, 에너지 등 국내 주력 제조업 전반에 쓰이는 '철강의 쌀'이다. 2024년 기준 국내 시장 규모가 약 10조원에 달할 만큼 우리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국들이 이미 강력한 무역구제 조치를 시행 중인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이번 조치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정당한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이번 판정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관세 부과와 병행된 '가격약속(Price Undertaking)' 제도의 활용이다. 이는 수출자가 자발적으로 가격을 인상해 덤핑 피해를 제거하겠다고 약속하는 제도로, WTO 협정과 국내 관세법에 근거한 합리적 수단이다. 이번 조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실익을 도모한다.

첫째, 국내 산업의 수익성 제고와 공정 경쟁 유도다. 무역위원회가 설정한 최저가격 이상으로 판매하도록 규율해 저가 출혈경쟁을 종식하고 공정한 환경을 조성한다. 과거 스테인리스강 평판압연 제품이나 H형강 사례에서 보듯, 가격약속 시행 후 수입 물량 감소와 가격 정상화라는 뚜렷한 산업 피해 구제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둘째, 전방 수요 산업과의 상생과 균형이다. 열연제품은 제조 산업의 필수 원재료다. 일방적인 고율 관세는 전방 산업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지만, 가격약속은 분기별 가격 조정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급을 유지하면서도 급격한 비용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 지대' 역할을 한다. 즉, 제강사를 보호하면서 전방 산업의 타격은 최소화하는 균형 잡힌 선택이다.

셋째, 통상 관계의 안정적 관리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의 주요 교역 파트너다. 강제적인 관세 부과 대신 수출자의 자발적 이행을 끌어냄으로써 통상 마찰 리스크를 관리하고 상호 우호적인 경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무역위원회의 의결은 국제 규범의 틀 안에서 관세 부과와 가격약속이라는 전략적 카드를 조화롭게 운용함으로써, 우리 철강 생태계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는 피해 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를 도모하면서도 전방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와 대외 통상 여건까지 입체적으로 고려한 정교한 결정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후 관리다. 정부는 가격약속 이행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고, 기업들은 회복된 시장 체력을 바탕으로 기술 고도화와 탄소 중립 전환에 매진해야 한다. 이번 판정이 우리 제조업의 뿌리를 단단히 다지고, 새로운 도약을 향한 든든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강준하 홍익대 법대 교수(전 무역위원회 위원)
강준하 홍익대 법대 교수(전 무역위원회 위원)

강준하 홍익대 법대 교수·전 무역위원회 위원 jhkang@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