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 폭등이 지속되자 PC 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원가 상승으로 수익성 부담이 커진 가운데 글로벌 PC 시장 2위 HP와 3위 델이 각각 AI PC 공급 확대와 가격 현실화라는 다른 전략을 선택해 주목된다.
HP와 델은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고 밝혔다.
제프리 클라크 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 6개월간 D램 가격은 5.5배, 낸드플래시는 4배 올랐다”며 “2분기에도 1분기 대비 20~50% 가격 상승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HP 역시 1분기 메모리 가격이 전 분기 대비 2배 상승, PC 제조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존 15~18%에서 35%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가격 인상이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올해 전체 PC 시장 규모가 10%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은 양 사가 동일하게 진단했지만, 위기 타개책은 엇갈렸다.

HP는 가격 인상보다 AI PC 확장을 선택했다. 일반 PC보다 가격이 20% 이상 높은 고부가가치 AI PC 판매 비중을 높여 이익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AI PC는 클라우드 연결 없이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제공하는 제품이다.
HP 출하량에서 AI PC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3분기 25%, 4분기 30%에 이어 올해 1분기 35%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HP는 윈도 10 종료에 따른 PC 교체율이 현재 60% 수준으로 남은 교체 대기 수요 40%를 AI PC로 유도, 제품 평균판매가격(ASP)을 끌어올리고 수익성을 방어한다는 전략이다.

델은 공격적 가격 정책을 내놓았다. 1월 PC 전 라인업 출고가를 올려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즉각 반영했다. PC 할인율을 낮추고, 프로모션도 축소했다.
델은 PC 출고가 추가 인상도 검토 중이다. 원가 변동에 따라 PC 출고가를 추가로 올리는 가격 현실화 정책을 이어갈 방침이다.
HP는 소비자 제품 비중이 높은 만큼 가격 인상보다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델은 고도화된 공급망 관리(SCM) 체계를 기반으로 강력한 가격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에 대응하는 양사 전략에 차이가 발생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메모리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반도체 가격 강세는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HP와 델이 어떤 결과를 도출할 지 주목되는 가운데 양 사 행보는 글로벌 PC 기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