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발발한 전쟁 열흘만에 국제 유가가 빠르게 상승해 배럴 당 100달러를 돌파,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기존 공급망 전략을 모두 재편해야 할 위기에 봉착했다.
최악의 경우 '오일쇼크'에 준하는 150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도 1500원까지 급등한 것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물류까지 차질이 발생하는 등 수출기업은 마땅한 대안 없이 사태를 살피는 데 급급한 형국이다.
◇국제유가 급등에…납사, 특수가스도 대거 인상, 석화업계 초비상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한국시간 9일 오전 7시55분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 5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16.5% 오른 배럴 당 107.99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18% 폭등한 107.38달러에 거래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 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두바이유 현물가격도 급등세다. 오피넷에 따르면 6일 배럴 당 100.42달러를 찍으며 100달러를 넘겼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직전인 지난달 25일 70.09달러 대비 열흘 만에 배럴 당 30달러 이상이 올랐다. 어느 때보다도 가파른 상승세다.
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 당 150달러까지도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른다. 카타르의 에너지 장관 사드 알-카비는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계속되면 몇 주 내에 원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도 투자자 노트를 통해 마찬가지 전망을 내놨다.
과거 '오일 쇼크' 사태에 버금가는 충격이 올 수 있다는 경고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150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경제성장률 최소 0.8%포인트(p) 하락, 소비자물가상승률 2.9%p 상승, 경상수지 767억달러 감소의 영향을 전망하고 있다. 특히, 석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여타 국가 대비 더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석유화학 산업은 이미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영향권에 직접 노출된 상황이다.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인 납사(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며 생산 차질 우려가 커고 있다. 오피넷에 따르면 6일 기준 납사의 가격은 배럴 당 88.1달러에 거래됐다. 지난달 27일과 비교해 약 27.9% 급등했다.
납사는 에틸렌 등 석유화학 기초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다. 납사를 수입해 사용하는 석유화학사는 벌써부터 수급 차질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합작사인 여천NCC는 고객사에 제품 공급 일정 지연과 물량 조정 가능성을 통보하며 불가항력을 선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대응책도 없다. 단발성으로 타 국가에서 납사를 확보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물량이 많지 않아 중동산 납사를 대체하기 어렵다.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업체별로 상황은 다르겠지만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면서 “비축유, 비축 납사가 고갈되는 한 달 뒤가 진짜 위기”라고 전했다.
납사 가격 인상은 시작일 뿐이라는게 산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납사는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수백가지 화학 소재의 원료 사슬 최상단에 위치한다. 납사 뿐만 아니라 헬륨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특수가스의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 LNG시설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한국의 카타르 LNG 수입 의존도는 30%에 이른다. 결국 연쇄적으로 소재 원가가 폭등하는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물론 주요 수출업체는 일제히 손익을 다시 따져 비용 상승 여부를 계산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대책회의를 연일 이어가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태 장기화시 전기세 인상 압박·중소기업 연쇄 도산 우려까지
가장 큰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따른 중동 국가들의 대대적인 석유 감산 우려다. 고유가가 현재의 배럴 당 100달러, 또는 150달러 수준으로 장기화될 경우 석화 제품 뿐만 아니라 에너지 비용까지 급등할 수 있다. 특히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국내 산업 전반의 가격 경쟁력을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앞서 열린 '에너지 상황 점검회의'에서 “단기적으로 국내 전력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란 공습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해도 전력시장의 LNG 가격은 통상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만큼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긴장 국면이 해소되지 않고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계속될 경우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앞서 한전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급등한 발전 원가를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해 2021년부터 3년 동안 47조8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이 당시와 같은 적자 압박을 버티지 못할 경우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산업계로 돌아갈 수 있다.
중소기업 역시 약한 고리다. 당장 제품 생산을 위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지만 납품단가는 이미 책정된 경우가 허다하다. 유가가 열흘만에 40% 가량 오른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제품을 생산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버티기 쉽지 않다.
여기에 겹친 1500원 상당의 원·달러 환율은 수입 원자재 비중이 높은 중소 제조업체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물류 봉쇄로 인한 무역 대금 납입까지 지연되면서 유동성 확보에도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산업계 관계자는 “해상운송 대체 루트로 증가하는 물류비는 물론이고, 유가 급등에 따른 재료비 상승분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라면서 “유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원가 상승 부담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조성우 기자 good_sw@etnews.com,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