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을 산업 현장에 도입·활용하기 위한 논의와 시도가 활발하다. 의료계도 AI로 진료 정확도를 높이고, 의료 업무를 혁신하려는 시도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데이터 표준화, 개인정보활용 등의 문제로 의료 AI 서비스 확산이 기대보다 더디다. 세계 최대 의료 AI 컨퍼런스 'HIMSS 2026'이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나라 의료AI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개선점을 모색하고, 혁신 방향을 제시한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지혜 HIMSS 한국지사장
△박홍석 고려대의료원 의학지능정보본부장
△서훈교 대상웰라이프 대표
△이형철 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
△정세영 분당서울대병원 정보화실장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데이터혁신센터장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
△사회=배옥진 전자신문 디지털헬스케어부 차장
◇사회(배옥진 전자신문 디지털헬스케어부 차장)=올해 HIMSS 화두는 단연 AI였다. 실제 의료진 업무와 의료 질 향상 등에서 AI로 인한 변화를 얼마나 체감하나?

◇이형철(서울대병원 헬스케어AI연구원 부원장)=지난 10년을 '딥러닝의 시대'라고 말한다. 알파고가 나온 이후 딥러닝 기반 AI 모델들이 등장했고 의료영상 판독이나 심전도 분석 같은 분야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HIMSS에서 보이는 변화는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에이전트 AI가 병원 환경에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의무기록 작성, 기록 리뷰, 처방 제안, 병원 행정업무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에이전트가 병원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세영(분당서울대병원 정보화실장)=분당서울대병원에 의미있는 AI 활용 사례가 3가지 정도 있다. 첫째는 심장초음파 자동 판독 소프트웨어(SW)인데 약 2년간 사용하고 있다. 하루 약 120~130건의 심초음파 검사가 이뤄지는데 전문의가 1명을 판독하는 데 평균 8~9분 걸린다. AI SW 도입 후 판독 시간이 약 1~2분으로 줄어 시간이 80% 이상 감소했다.
응급실에는 심전도(EKG) AI를 적용했다.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시술까지 걸리는 시간이 중요한데 AI 적용 이후 약 10분 정도 단축됐다. 건강검진센터에서는 안저 판독 AI를 약 1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데 전공의 판독과 비교해 차이가 크지 않다.
다만 AI SW를 도입할 때 초기 기대가 과도한 경우가 많다. 사람이 판독하는 수준으로 환자가 크게 걱정없이 받아들이도록 재설계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안전한 활용과 도입, 성과평가 체계를 마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박홍석(고려대의료원 의학지능정보본부장)=LLM 기반 AI 에이전트가 큰 변화를 일으킬 것 같다. AI 에이전트가 도입돼서 의료 현장의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다 보니 안전한 수행과 모니터링, 관리 등 전반적인 거버넌스를 잘해야 한다. 오픈클로(OpenClaw) 사례처럼 전체 거버넌스에서 AI가 폭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올해 고려대의료원은 AI 에이전트를 도입하기 위해 GPU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려고 한다. 보안을 위해 온프레미스 환경에서도 GPU 리소스를 충분히 갖추고 행정 부문에도 AI 에이전트로 도움을 받는 영역을 발굴해야 한다.
◇차원철(삼성서울병원 데이터혁신센터장)=상반기 중 전 직원 대상으로 AI 챗 서비스 개설을 목표로 현재 개발 중이다. 국제 진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외 환자가 가져온 서류를 잘 인식해서 내용을 추려낸 후 병원 내부 서식에 연계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사회=의료 AI 핵심인 데이터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황희(카카오헬스케어 대표)=데이터 활용 수준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 차이가 크게 달라질 것 같다. 개별 병원의 데이터 준비 수준은 전반적으로 글로벌 기준에서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병원 간 데이터 상호운용성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개별 병원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며, 국가 차원의 표준과 정책이 필요하다. 또 데이터 활용에 따른 수혜를 누가 입는지, 비용을 누가 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있어야 한다. 최근 정부에서도 데이터 표준화와 상호운용성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형철=최근 흥미로운 것은 AI를 활용해서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상호운용성을 잘 구축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AI를 위한 표준화'도 있지만 'AI에 의한 표준화'도 가능해졌다. 그래서 용어 표준화, 형식 변환, 상호운용성을 위한 서버 제공 등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이제는 정말 '가능'해졌다. 병원에서 이를 활용해서 표준화에 속도를 냈으면 좋겠다.
◇정세영=국가 차원의 의료 데이터 표준 양식은 제정됐지만 확산 속도는 빠르지 않다. 제도화나 법제화 속도가 미국보다 늦다. 어느 환경에서 어떻게 의무적으로 적용할지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심평원 전자청구를 일찍 도입하다보니 오히려 제한 효과가 생겨서 최신 트렌드 도입이 늦다.
◇김지혜(HIMSS 한국지사장)=한국은 대형병원 중심으로 전자의무기록(EMR),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임상 데이터 축적과 디지털 인프라 기반이 강하다. 글로벌 경쟁력은 데이터 보유량 자체보다 그것이 얼마나 표준화돼 있고 상호운용이 가능하며 연구·진료·운영 성과로 연결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앞으로 한국이 단순히 '데이터가 많은 나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성숙도와 AI 성과를 국가 차원에서 비교 가능하게 제시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HIMSS의 연구 협력 방향도 기관 성과, 성과 프레임워크, 벤치마킹, 국가·권역 단위 성숙도 분석으로 이를 구조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회=개인 건강정보 플랫폼 활용은 어떤 수준까지 왔나? 의료계·빅테크와 어떤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박홍석=헬스케어는 의사 입장에서 데이터를 충분히 관리하는 이점도 있지만 제약도 된다. 데이터가 이동할 때마다 동의를 받는 구조는 이해하나 알 수 없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도 심평원의 국가 데이터가 잘 돼 있지만 지금까지는 접근이 힘들었다. 많이 개선됐지만 좀 더 수월해져야 한다. 병원뿐만 아니라 직접 일상생활을 모니터링하는 시대가 됐으니 그 데이터까지 관리하는 시대여야 한다.
◇황희=정부가 주도하는 건강정보 고속도로가 실제 작동한다면 가장 강력한 형태의 개인 주도형 건강관리 서비스가 될 것이다. 문제는 마이데이터를 비즈니스화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한국에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쓰고 싶어하는 요구와 비용 발생 측면에서 간극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은 전진하고 있다. 카카오헬스케어의 혈당·비만 관리 서비스는 국내 500개 1차 병원에 데이터를 보내고 있는데 거꾸로 환자가 동의해서 병원 데이터를 파스타 앱으로 불러온다면 서비스가 훨씬 강력해질 것이다. 당분간 각 버티컬 서비스들이 자유자재로 데이터를 사용해서 여러 분야 서비스를 확대하는 식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한다.

◇서훈교(대상웰라이프 대표)=현재 국내 개인 건강정보 플랫폼은 웨어러블 기기와 앱 기반의 자기 기록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상웰라이프는 식품·건기식 분야의 임상 전문성과 AI 기술을 결합해 의료계가 채우기 어려운 병원 밖 일상 건강관리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 필요한 협력 모델은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이 환자들의 병원 밖 건강관리와 예후 추적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형 파트너십이다. 병원 밖 데이터가 연동된다면 병원도 환자 생활 습관이나 진료 시 발견하지 못한 만성질환의 특정 요소들을 파악하게 돼 진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헬스케어 플랫폼의 라이프로그 데이터 연계 역량이 병원 데이터와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치료 예후와 사후 관리 효과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사회=최근 국내 병원들이 각자 개발 중인 LLM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황희=좋은 파운데이션 모델을 병원 데이터로 트레이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개별 병원이 완전히 새로운 LLM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수준은 기존 파운데이션 모델을 가져와 병원 데이터로 미세 조정하거나 특정 업무에 맞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병원에서 LLM 기반 서비스를 만들 때 실제 업무 흐름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의무기록 작성 AI는 의무기록을 작성한 후 필요한 검사를 제안하고, 과거 유사 환자 사례를 찾아주고, 필요한 연구 자료를 연결하는 등 여러 기능이 연계돼야 실제 업무 부담이 감소한다. 이런 기능은 병원마다 진료 과정과 시스템 구조가 다르므로 각 병원별로 맞춰 설계할 필요가 있다.
◇박홍석=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으로 학습시켜서 연구 기반용으로 LLM 개발을 시도해봤겠지만 상용화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개별 병원이 빅테크를 따라잡는 것은 어렵다. 과거에는 SW를 직접 개발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이미 좋은 모델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이형철=AI 에이전트를 기준으로 본다면 각 병원마다 만들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의무기록 작성 기능을 수행하는 LLM은 공통 모델을 사용할 수 있지만 실제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무기록 작성 시스템이나 업무 흐름은 병원마다 다르므로 관련 AI 에이전트는 병원마다 별도로 설계해야 한다. 결국 공통 모델 위에 병원별 업무흐름을 반영한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구축하는 형태가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병원과 네이버가 함께 개발하고 있는 의료 특화 LLM '케이메드AI(KMed.ai)'는 국내에 우선 빠르게 확산해서 활용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반응이 좋다면 해외에도 진출하려 한다. 다만 해당 국가 버전으로 변환하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다.
◇황희=중요한 말씀이다. 대형 LLM은 수백억개 이상 파라미터를 가진 모델이 많다. 이런 모델을 병원 환경에서 자체 운영하려면 막대한 GPU 자원이 필요하다. 의료 데이터 특성을 보면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가 많지만 범용 LLM처럼 거대 모델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병원에서는 2B~3B 모델도 텍스트 기반 모델로 트레이닝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모델 경량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향후에는 더 작은 모델로 병원 환경에서 AI를 운영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방향이 될 수 있다. 빅테크가 얼마나 빠르게 모델 경량화를 하느냐에 따라 온프레미스 AI를 고려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해질 것이다.

◇사회=한국 의료 AI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선결 과제는?
◇황희=우리는 외국 솔루션에 대해 문을 걸어잠그고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게 많으면서 국산 솔루션을 수출하자는 것은 모순이다. 민감정보 관리는 찬성이지만 그 이유로 외산 솔루션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곤란하다. 글로벌 사업을 하고 싶으면 우리 스스로 세계화를 해야 한다. 소버린을 추구하지만 해외 기술에 대한 개방성과 최선의 레버리지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대표적 사례가 싱가포르다. 과거 한국에 의료IT를 배우러 온 국가지만 지금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디지털 헬스케어 국가로 성장했다. 상당히 개방적이고 외국 기업에 생태계를 열어준 게 주효했다.
◇차원철=민·관·병이 원팀이 되는 게 핵심이다. 싱가포르가 이 전략으로 큰 성과를 냈다. 원팀 전략은 비용이 아닌 '투자'다. 함께 할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정세영=한국은 건강보험 체계 특성상 의료 AI나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을 수출할 때 제대로 가성비 있게 테스트할 수 있고 시스템 전체를 수출할 수 있는 역량이 독보적이다. 한국에는 수가를 적용받는 다양한 AI SW들이 있어 정부 차원에서 AI SW의 투자대비효과(ROI)를 측정할 수 있다. 반면 저개발국가에는 국가 건강보험 시장이 없기에 이런 시스템을 배우고 싶어하는 곳들이 많을 것이다. 통합 시스템 차원의 수출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 토털 패키지처럼 기업·정부·병원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한다면 어떨까. 부가가치를 창출할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병원이 국내에 많다.
◇서훈교=국내 의료 AI 기업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것은 기술 현지화가 아닌 '신뢰의 현지화'다. 기술력 자체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지만 각국 의료 규제 환경과 현지 의료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진입장벽을 넘기 어렵다. 대상웰라이프의 경우 규제 환경과 의료 인프라 격차를 전략적으로 고려해 동남아 시장을 선택했다. 기업 개별 노력을 넘어 정부, 의료기관, 기업이 함께 'K헬스케어 브랜드' 수준의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

라스베이거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