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AI, 인프라에서 시장과 산업으로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

우리나라는 신기술에 진심인 나라다. 인구 대비 챗GPT 유료 구독자 비율이 세계 1위다. 챗GPT 서비스기업 오픈AI가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AI) 활용 국가로 규정한 이유다. AI 기반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테슬라의 세계 판매량이 소폭 감소했음에도, 국내에서는 작년 미국과의 무역 협상 결과로 완전자율주행(FSD) 기능 허용과 함께 판매량이 2배 급증했다.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엑스(X) 계정에서 “한국인은 신기술 수용에 늘 한발 앞서 있다”라며 찬사를 보낸 이유다. 이러한 국민의 신기술 수용성은 오히려 디지털 서비스 수지의 적자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검색엔진 분야에서는 구글에 맞서 토종 플랫폼이 자생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든든한 토양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뜨거운 열기를 단순한 '소비'를 넘어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 '산업의 생산성'으로 연결해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은 올해를 AI가 국민의 실생활과 산업현장에 조속히 확산하는 원년으로 삼고 있다. 핵심은 'AI 모델 개발'과 'AI 활용'이 동시에 진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정부와 NIPA는 세계 최고 수준(SOTA)에 근접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위해 단계별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진행되는 2차 단계에서는 모티프테크놀로지스 정예 팀이 추가 공모에 선정돼 대기업 2개사, 스타트업 2개사로 경쟁구조가 재편됐다. 4개사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올해 연말에는 글로벌 선두권과 경쟁할 수 있는 토종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우리가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핵심 병기다. 독자 AI 생태계 구축은 국방이나 안보, 반도체를 포함한 제조 분야 등 민감한 영역에서의 자주권 확보는 물론 향후 디지털 수지 분야에서도 거대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끌려다니지 않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 25.12.30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 25.12.30

NIPA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그리고 산업 분야별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을 산업과 공공 현장에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진행한다. 산업과 공공 분야에 AI를 접목하는 AI 활용은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AI 민생 10대 프로젝트를 비롯한 공공 인공지능전환(AX) 프로젝트, AI 에이전트 지원 활용 사업, 경남·전북의 피지컬 AI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2023년부터 시작된 공공 AX 프로젝트의 경우 관세청은 NIPA 지원을 받아 세관 현장에서 통관 판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AI 기반 판독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관세청은 마약, 도검 등 26종 위해·위법 물품의 국내 반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직구 증가 등에 따른 통관 물량 증가와 업무 과중을 효과적으로 낮추고 있다.

관세청에서 사용 중인 AI 기반 통관 판독 체계
관세청에서 사용 중인 AI 기반 통관 판독 체계

또, 정부와 NIPA는 올해 600억원을 투입해 공공의 업무를 혁신할 수 있는 공공 AX 과제 20개와 국민에게 다가가는 AI 민생 10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지원 금액과 과제 수를 대폭 늘렸다.

<AI 민생 10대 프로젝트 관련 현재 공모 중인 과제>
<AI 민생 10대 프로젝트 관련 현재 공모 중인 과제>

산업 분야에서는 2024년부터 2년간 초거대 AI 활용 지원 사업을 통해 미디어, 법률, 학술 분야에 AI 서비스를 실증했다. 영상 이해 모델을 보유한 트웰브랩스는 이 사업을 통해 SBS에서 실증하고 해외 거대 미디어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NIPA는 올해부터 금융, 미용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단순 AI 서비스 활용을 넘어 멀티 에이전트를 개발·적용해 원하는 목표를 자동으로 실행하는 과제로 이어간다. 이와 함께 경남과 전북 지역에 올해부터 5년간 각각 1조원이 투입되는 '피지컬 AI' 사업을 진행한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 제조 현장의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항해 시대, 산업혁명 시기에서 보았듯, 거대한 변혁의 시기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산업,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지난해 정부는 'AI 고속도로' '모두의 AI'를 모토로 그래픽처리장치(GPU) 조기 확보, 국가 AI 데이터 센터 구축 사업,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지원 등 굵직한 대형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그 결과 영국의 글로벌 AI 인덱스(Global AI Index) 2025에서 우리나라는 AI 분야 전년 대비 1계단 상승한 5위로 평가받았다. 미국 유명 AI 벤치마킹 기관인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는 파운데이션 모델 평가에서 우리나라를 미국과 중국에 이은 3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인프라라는 기초 체력은 어느 정도 다져진 셈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인프라 위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미래의 주도권은 '누가 더 큰 서버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시장의 요구를 기술로 더 정확히 충족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AI가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내고 '매출' 항목으로 당당히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AI 대전환은 완성된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국민 특유의 신기술 수용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AI 서비스 강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 yunkyu85@nipa.kr

〈필자〉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은 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30여년간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ICT·디지털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청와대 선임 행정관, 4차산업혁명위원회 지원단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2025년 3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제6대 원장으로 취임해 대한민국의 AI 글로벌 3강 도약과 피지컬 AI 혁신을 통한 AI 대전환 선도, 우리 AI·ICT 기업의 세계 무대 도약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