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경제의 시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세계 최대 클러스터 조성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철강·정유·석유화학 등 위기업종은 사업 재편에 나서며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달리 산업 현장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치솟는 전기요금 부담에 “공장을 돌리기가 겁난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 막대한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망을 확충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해야 할 한국전력의 곳간은 비어 있다. 영업이익이 일부 개선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200조원이 넘는 거대한 부채는 한전의 손발을 묶고 있고 미래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단순히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누구에게 더 걷을 것인가라는 1차원적인 셈법에만 매몰되어서는 곤란하다. 국가 경제의 장기적인 효율성을 고민한다면, 우리는 장부상의 숫자를 넘어 경제학의 원칙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은 단순한 시장 가격이 아니다. 공공요금에 대한 원가 회수를 위해 한계비용 이상의 요금을 설정하는 과정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재화에 세금을 부과하여 시장을 왜곡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최적 과세의 원칙을 떠올리게 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다이아몬드와 제임스 멀리스는 생산 효율성 정리를 통해 국가 경제를 위한 중요한 제언을 남겼다. 세금은 최종 소비재에 부과해야지, 중간재에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요소의 가격이 왜곡되면, 생산자가 기술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최적의 생산 방법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비의 측면에서도 되짚어볼 대목이 있다. 최적 과세 이론의 하나인 콜렛-헤이그 원칙은 여가와 관련된 소비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생산 활동과 연관된 재화에는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생산적인 활동에는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뜻이다.
가령 24시간 가동되는 공장과 여가를 즐기는 시설이 있다고 할 때, 같은 전기를 쓰더라도 생산 현장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경제 원칙에 부합한다. 생산자가 소비자보다 홀대받는 구조 속에서는 기업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혁신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이러한 왜곡된 신호를 바로잡고, 기업이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전기요금의 설계다. 반도체나 철강, 정유, 석유화학처럼 공정을 멈출 수 없어 24시간 연속 가동이 필수적인 국가 주력 산업에 대해서는 계절과 시간대별 요금 체계를 유연하게 적용해 실질적인 생산 비용 부담을 낮춰줘야 한다. 아울러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가 불일치하는 현실을 고려해, 전력자급률이나 송전 거리 등을 반영한 지역별 요금제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다. 이는 기업의 생산 비용을 낮출 뿐 아니라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돕는 시장 친화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은 가장 생산적인 곳에 우선 배분돼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에 대한 지원 논리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한 냉정한 경제학적 원칙이다. 생산자가 최적의 환경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이제는 전기요금에 담긴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할 때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정보통계학부 교수 khg@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