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자율주행 업계에서 E2E(End-to-End)는 기술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논의의 초점은 여전히 모델의 정밀도와 알고리즘 고도화에 머물러 있다. 물론 학습 구조의 진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E2E의 상용화를 가르는 본질적 변수는 성능 수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작동해야 하는 산업 구조와의 정합성에 있다.
자율주행은 단일 소프트웨어(SW)로 완결되는 영역이 아니다. 완성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티어1, 반도체 기업, 각국의 규제 체계, 그리고 대규모 양산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복합 산업이다. 이 환경에서 핵심 질문은 '기술적으로 가능한가'가 아니라 '산업적으로 통제 가능한가'에 가깝다.
학습 기반 모델이라 하더라도 기능적 경계와 책임 범위가 명확히 정의되고, 변경 관리와 재검증 체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양산 생태계에서는 모델의 정확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안전성 검증 범위가 어디까지 설정되는지, SW 업데이트 이후에도 동일한 수준의 규제 적합성과 재인증이 가능한지, 기능 단위별 책임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는지, 그리고 수년간의 차량 운영 기간 동안 유지보수가 구조적으로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가 함께 고려된다. 기술은 개발 단계가 아니라 운영 단계에서 비로소 검증된다.
최근에는 통합 학습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검증 가능성과 확장성을 확보하려는 접근이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모듈형 E2E는 단순히 기존 구조에 대한 타협이 아니다. 이는 대규모 양산과 장기 운영을 전제로 한 전략적 설계다.
통합된 네트워크의 장점을 유지하되, 산업 체계 안에서 관리 가능한 구조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를 '통제 가능한 E2E'라고 정의한다. 기술의 혁신성과 산업적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접근이다.
자율주행 산업에서 '좋은 기술'은 곧 '양산 가능한 기술'을 의미한다. 글로벌 OEM 프로그램은 긴 개발 주기와 엄격한 품질 기준을 요구하며, 단일 프로젝트 성공과 다수 플랫폼 확장은 전혀 다른 역량을 필요로 한다. 상용화 단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검증 가능성, 규제 적합성, 양산 대응력, 그리고 글로벌 플랫폼 확장성이다. 기술은 이 조건을 충족할 때 비로소 산업적 가치를 획득한다.
또 최근 SW 기업들의 수익 구조는 차량 생산량과 연동되는 로열티 기반 모델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기술이 일회성 납품을 넘어 반복 적용되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산업 구조와 정합성을 이루지 못한 기술은 스케일을 만들기 어렵다.
자율주행은 이제 기술 데모 단계를 넘어 지속 가능성을 요구받고 있다. E2E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력은 모델의 혁신성에만 있지 않다. 그것이 산업 체계 안에서 통제 가능하게 작동하고, 확장 가능하며, 장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E2E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구조의 문제다.
강봉남 스트라드비젼 자율주행 핵심 기술 개발 총괄 박사 bongnam.kang@stradvi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