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미국에서 추방돼 중남미 최대 감옥인 엘살바도르 세코트(CECOT)에 수감된 베네수엘라 남성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송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는 정부의 이민 행정에 대한 사법적 심판으로 작용해 미국 이민 정책 역사상 유례없는 '도미노 소송'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CBS 뉴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남성 네이예르버 아드리안 레온 렌겔(28)은 지난해 엘살바도르 세코트 교도소에서 약 4개월간 '고문'에 가까운 수감 생활을 보냈다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에 접수된 소장에서 원고는 불법 감금 및 고의적인 정신적 고통 유발에 대한 보상으로 최소 130만달러(약 19억5000만원)의 배상금을 요청했다.
소장에 따르면 원고는 “4개월 동안 세코트 교도소에 갇혀 경비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비인간적이고 과밀한 환경에 처했으며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으며, 가족이나 변호사와 접촉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원고인 렌겔은 CBS와 인터뷰에서 “교도관들은 나와 동료 수감자들에게 끊임없이 구타와 학대를 퍼부었다. 수감자들이 목욕한 물을 마시기도 했다. 어떤 교도관들은 90년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며 “우리에게 준 시트로 목숨을 끊을까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렌겔은 지난해 3월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엘살바도르 세코트 교도소로 이송돼 약 4개월 간 구금된 중남미 출신 이민자 중 하나다. 같은 해 7월 포로 교환을 통해 석방됐다.
미국 정부는 렌겔이 갱단 '트렌 데 아라과'의 조직원이라며 추방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렌겔 측은 마약 도구 소지 같은 경미한 전과만 가졌으며, 조직원의 증거라는 문신은 자신의 직업인 이발사를 상징한다고 반박했다.
그의 소송을 도운 미주 라틴계 시민 연맹(LULAC)과 민주주의 수호 기금(DDF)은 “렌겔에게 일어난 일은 정부가 묵인한 고문이며 그가 이민자라는 이유로 인간성을 인정받지 못한 행위”라며 “그는 법정에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향후 줄소송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엘살바도르로 추방된 베네수엘라 남성은 렌겔을 포함해 200여명에 달한다. 당시 추방된 베네수엘라인 중 상당수가 범죄 기록이 없었으며, 갱단과의 연관성을 부인했기 때문에 적법한 사법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지적이 나왔다.
다만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CBS 뉴스에 “이 불법 체류자는 트렌 데 아라구아 갱단의 연루자로 확인돼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되는 인물로 간주됐고, 미국에서 추방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국가 안보가 훼손될 수 있다며 관련 증거 공개를 거부했다.
렌겔은 현재 고국인 베네수엘라로 돌아간 상태다. 그는 “미국에서의 구금 경험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현재는 누명을 벗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