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의 무지(無智) 무득(無得)]사바세계(娑婆世界)의 감인(堪忍)을 넘어 주인공으로

이강우 동국대 컴퓨터AI학부 교수
이강우 동국대 컴퓨터AI학부 교수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娑婆世界)라 한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의 고통은 물론, 살면서 조우(遭遇)하는 모든 고통으로 가득 찬 곳이, 바로 사바세계다.

이 말은 본래 '참고 견디는 땅', 즉 인토(忍土)라는 뜻을 내재한다. 많은 이들이 '사바세계를 감인(堪忍)한다'는 말을 '닥쳐오는 고통을 수용하고 억누르는 소극적 인내'로 이해한다. 하지만 감인의 진정한 의미는 체념이나 굴복이 아니다. 그것은 폭풍우 치는 외부 환경과 내면의 격동 사이에서 찰나의 간격을 확보하는 고도의 능동적 행위다.

진정한 감인은, 모든 변화가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영원하지 않다는 무상(無常)의 이치를 꿰뚫는 지혜를 전제로 한다. 즉,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서핑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동적 평형의 상태로서 '변화의 본질을 통찰해 더 큰 도약을 이뤄내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격랑 앞에 마주 서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주체적 감인'의 자세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유례없는 혼란에 빠져있다. 가장 유망했던 전공이 지금은 사양 산업이 되고, 인간만의 영역이라 믿었던 지성과 창의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이 현실은 청년들에게 존재론적 불안감마저 안겨준다. 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기술의 속도는 눈부시게 빨라지는 이 상황이 그들에게는 현대판 구부득고(求不得苦: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이자 행고(行苦:변화에 의한 불안)인 것이다.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감히 말한다. 지금의 불안은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이 사바세계인 이상, 변화와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상수(常數)다. 그러나 이 혼란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여러분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진다. 첫째, '무지무득(無智無得)'의 지혜로 고정관념의 감옥, 즉 정답으로 알았던 성공 공식에서 탈피하라. '이 전공을 하면 성공한다'라는 낡은 지식(智)과 소유욕(得)은 변화무쌍한 AI시대에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뿐이다. 무지무득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낡은 정답에 갇히지 않는 유연함'이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은 바로 이러한 유연한 사유와 질문하는 힘에서 나오며, 그로 인해 새로운 시대의 파도를 탈 수 있다.

둘째,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라. 대전환기는 위기인 동시에 거대한 기회다. 기술은 인간을 돕는 도구일 뿐, 그 도구로 어떤 가치를 만들고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결정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AI에 종속된 객체로 살 것인지, AI를 잘 부려서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하는 주체로 살 것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소극적 인내로 시대에 휩쓸려 가는 조연이 되지 말고, 이 혼란을 수행의 장으로 삼아 스스로 길을 내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인내의 시간을 '실력을 기르는 응축기'로 삼아라. 지금의 고난을 버티기로 소모하지 말라.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서핑을 배울 수는 있다. 기술의 본질을 공부하고, 인문학적 통찰력을 기르며,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잡는 정(定)과 혜(慧)를 닦으라. 고뇌가 깊을수록 피어날 깨달음의 꽃은 더욱 찬란할 것이다.

청년들이여! 이 상황은 '막다른 길'이 아니라 새로운 통찰을 위한 '혁신의 문'이다. 작은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금강(金剛)과 같은 평정심을 가지고 거대한 파도 속에서 의연하게 노를 저어 나아 가라. 여러분은 AI 시대에 인간 존엄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고 실천할 주역이며, 여러분의 주체적인 의지가 이 시대의 절대적 희망이다. 여러분의 고뇌가 깊어질수록 대한민국의 기술 영토가 넓어지고, 국민의 삶이 안전해진다. 여러분의 땀이 사바세계의 고통을 씻어내는 감로수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경의와 응원을 보낸다.

이강우 동국대 컴퓨터AI학부 교수 klee@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