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M&A 논의가 기술탈취로 돌아왔다”…중소기업 4곳, SK에코플랜트·한화솔루션·KT 등과 분쟁 제기

협력 제안과 투자, 인수합병(M&A) 협상 과정에서 제공한 기술과 사업 정보가 오히려 '기술탈취'로 이어졌다는 중소기업들의 집단 문제 제기가 나왔다. SK에코플랜트, 한화솔루션, KT를 비롯해 코스닥 상장사 인산가까지 다양한 기업과의 분쟁 사례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피해 기업들은 입증책임 완화와 무형 기술 보호 확대, 기술탈취 사건 패스트트랙 도입 등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송재봉·김종민 의원과 재단법인 '경청'은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상생룸에서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엔이씨파워·씨지아이·티오더·씨디에스글로벌 측이 참석해 각 중소 기업이 겪은 기술 분쟁 사례를 설명했다.

이들은 협력 제안이나 투자·M&A 협상 과정에서 제공한 핵심 기술자료와 사업 정보가 이후 상대 기업의 제품·서비스 개발에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AI 알고리즘, 공정 노하우, 영업 전략 등 무형 기술 자산에 대한 보호 장치가 미흡해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더라도 입증과 구제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엔이씨파워는 SK에코플랜트와 협력 논의 과정에서 소각로 AI 자동운전 최적화 솔루션 관련 핵심 자료를 제공한 뒤 유사 기술이 자체 솔루션으로 사업화됐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협력 논의 당시 온도센서 위치 도면과 데이터베이스 구조, 클라우드 연동 관련 자료 등 핵심 기술 정보를 제공했지만 이후 정식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심재용 엔이씨파워 대표는 “소각로에 들어가는 이 운영 솔루션은 15년 동안 독자 개발해온 것으로, 감정가 102억원을 인정 받은 핵심 자산”이라며 “수의 계약으로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해와서 진행하다 최종적으로 계약이 거절된 뒤 불과 1년만에 SK에코플랜트에서 관련 특허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상용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AI 알고리즘 등 무형 기술의 경우 약간의 변형만 가해져도 기술 탈취를 피해 기업이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피해 중소기업이 탈취 개연성만 입증하면 대기업이 독자 개발 여부를 증명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과 함께, 기술 제안 초기 단계에서 공공 검증기관이 기술을 인증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수 씨지아이 대표가 7일 중소기업 중앙회 상생룸에서 열린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 기자간담회'에서 한화솔루션으로부터 기술 탈취를 당한 자사의 모바일용 박판 베이퍼챔버 제품을 직접 들고 설명하고 있다.
조영수 씨지아이 대표가 7일 중소기업 중앙회 상생룸에서 열린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 기자간담회'에서 한화솔루션으로부터 기술 탈취를 당한 자사의 모바일용 박판 베이퍼챔버 제품을 직접 들고 설명하고 있다.

씨지아이는 한화솔루션과의 M&A 협상 과정에서 제공한 모바일용 박판 베이퍼챔버 관련 기술실사 자료가 협상 결렬 이후 6개월만에 태국 공장에서 유사 제품 생산에 활용됐다고 주장했다. 한화솔루션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상생 협의 대신, 시간 끌기를 통해 고사시키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영수 씨지아이 대표는 “해당 기술은 자체 개발에 최소 2년6개월에서 3년이 걸리는 수준인데, 상대 기업은 M&A 협상이 끝난 지 6개월 만에 태국 공장을 세워 삼성에 납품을 시작했다”며 “직접적인 피해액만 약 300억원에 달하지만, 수사를 의뢰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사건이 해결되지 않아 회사 경영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티오더는 KT와의 사업 협력 및 M&A 논의 과정에서 사업계획과 기술 구조, 고객 데이터 등 핵심 정보가 제공된 이후 유사 서비스가 출시됐다고 주장했다. 또 SK쉴더스에서도 1만개의 제품 발주를 요청하며 기술 개발을 요구해놓고 실제 발주는 하지 않아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다.

권성택 티오더 대표는 “현장에서 KT측이 티오더를 비방하며 'M&A가 실패하면 곧 망할 것'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 정황을 영상과 녹취로 확보하고 있다”며 “또 자사가 보유한 통신망 인프라의 독점적 권한으로 스타트업을 고사시키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씨디에스글로벌은 인산가와의 죽염 용융로 개발 과정에서 제공한 설계 도면이 상대 회사 명의 특허로 출원됐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들 기업들은 기술탈취 사건에서 피해 기업이 대부분의 입증 책임을 부담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술 제안 단계에서 제공된 자료가 실제로 활용됐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장기간 소송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기업들은 AI 알고리즘과 영업비밀 등 무형 기술 보호 확대, 기술 제안 단계 검증제도 도입, 입증책임 완화 또는 전환, 기술탈취 사건 전담 패스트트랙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등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했다.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상생룸에서 열린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 기자간담회'에서 기술 탈취피해 중소기업과 경청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상생룸에서 열린 '기술 탈취 피해 중소기업 기자간담회'에서 기술 탈취피해 중소기업과 경청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재단법인 경청 측은 “기술협력과 투자, M&A가 혁신 생태계의 성장 경로가 돼야 하지만 일부 사례에서는 오히려 기술 분쟁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중소기업 기술 보호 제도를 보다 실효성 있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