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사용자를 위한 연구기반이 필요하다

[과학산책]사용자를 위한 연구기반이 필요하다

기술공급자인 산·학·연을 위한 연구기반 구축에 상당한 노력이 있었다. 기술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 장비와 시설, 정보, 서비스 시스템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탈(脫)추격형 혁신과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이 혁신정책 핵심 이슈가 되면서 새로운 활동이 요청되고 있다. 사용자 혁신활동 참여를 위한 연구 기반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추격형 혁신의 경우 개발하려는 기술을 이미 사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기술사용 맥락에 깊은 이해가 없어도 혁신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궤적을 형성하는 탈추격 혁신은 사용자 요구와 수용성에 대한 지식이 필요 하다. 사용된 적 없는 기술을 구현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도 사용자 요구와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보건·복지, 안전, 환경, 에너지와 같은 생활세계와 관련된 문제를 기술혁신을 통해 해결하기 때문이다. 사회문제 정의에서부터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설계까지 사용자 관점을 강조해야 한다.

사용자 요구와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사용자를 혁신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사용자 스스로 요구를 개념화하고 그것을 기술 공급자와 같이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리빙 랩(living lab)`과 `팹 랩(fab lab)`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 참여형 연구기반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

리빙 랩은 도시와 농촌· 아파트· 실버주택과 같은 생활세계에서 사용자와 산학연이 협력해 새로운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실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사용자는 관찰 대상이 아니라 혁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사용자는 `참여형 설계` 교육을 받기도 한다. 리빙 랩에서 실제 생활을 영위하는 사용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산학연은 그것을 구현해 사용자에게 피드백 한다. 사용자 경험을 반영한 실증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혁신 성공가능성도 높다.

덴마크 장애인 학교에서 운영 중인 리빙 랩에는 이런 과정으로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술을 개발·실증하고 있다. 노틀담 등 몇 유럽도시에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위한 도시 수준의 리빙 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리빙 랩 네트워크에는 300여개의 랩이 참여하고 있다.

팹 랩은 CAD, 3D 프린터 같은 디지털 기기, 시험생산 장비를 구비하여 학생과 예비 창업자, 문화예술인,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구현하는 공간이다. 사용자는 현장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팹 랩은 이 활동을 지원한다. 40여국에 걸쳐 110개를 넘는 팹 랩이 운영되고 있다. 팹 랩에서 개발된 인공물 정보는 데이터베이스(DB)화돼 공개되기도 한다. 다수 사용자가 개발한 지식과 디자인을 공유해 다중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올해 서울 팹 랩이 세운상가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과천과학관에는 교육용 팹 랩인 무한상상실이 문을 열었다.

리빙 랩과 팹 랩과 같은 사용자 참여형 연구기반은 시민생활에 밀착된 하부구조다. 이는 탈추격 혁신과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을 지원하는 기반인 동시에 시민사회와 공간적·심리적으로 분리됐던 과학기술을 생활에서 구현하는 과학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연구기반사업은 기술공급자, 시설·장비 등 하드웨어 구축에 초점을 맞춰왔다. 창조와 국민행복을 위해서는 이제 연구기반사업에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용자의 참여와 그들의 생활세계가 탈추격 혁신과 사회문제 해결에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songwc@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