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사회·기술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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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위진 STEPI 선임연구위원
<송위진 STEPI 선임연구위원>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는 창조적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국민행복을 위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추격형 혁신 활동으로 선진국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기술을 빠르게 모방·구현하는 전략을 취했다. 기술이 어떻게 사회에 수용될 것인지 깊은 고려 없이도 기술을 안착시킬 수 있었다. 이미 기술이 사회적으로 수용돼 널리 사용되는 가치사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새로운 기술 궤적을 형성해야 하는 탈추격형 상황이 전개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해결해야 할 문제,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기술의 사회·경제적 효과, 기술이 구현되는 사회적 조건, 기술이 유발하는 위험 관리에 깊은 이해가 없으면 앞으로는 성공적인 기술개발은 불가능하다. 사회와 기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사회·기술시스템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기자동차를 창조형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사회·기술시스템에 대한 통합적 전망이 요구된다. 소비자가 전기자동차에 부여하는 의미와 이동 행동의 특성, 충전소 등 관련 기술 인프라, 안전관련 기준과 규제, 보험제도, 모듈화된 생산시스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실업과 자동차 공장의 해외이전 가능성,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의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정책 의제로 부상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도 사회·기술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보건·복지, 안전, 환경, 에너지 영역에서 기술혁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다.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 정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술개발, 개발된 기술을 사회서비스로 구현하는 전달체계 실증 등 사회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할 때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유독물질 유출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독 물질 조기발견 시스템 개발로는 부족하다. 작업자가 일하는 방식과 위험대응 행동에 대한 이해, 조직의 사고대응시스템, 오염원의 확산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 공공부문의 재해대응시스템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사고가 났을 때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면 개발된 기술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형 혁신과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은 이제 사회와 결합된 사회·기술시스템을 혁신(system innovation)하는 활동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수행하는 핵심적 혁신 활동을 기술혁신 아니라 사회·기술혁신의 프레임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기술시스템 혁신은 요소기술만이 아니라 제도, 주요 주체, 문화, 하부구조 전반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 번의 큰 정책으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기술의 맹아를 형성하고 지속적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을 통해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이때 전국을 대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시스템 혁신 관련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모델을 먼저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기자동차를 핵심 이동수단으로 활용되는 지역, 유독물질 대응 실험 공업단지를 ‘일상 실험실(living lab)’으로 정해 새로운 사회와 기술이 교직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평가하는 접근이 요청된다.

기술만으로 혁신을 이야기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규모 사업 한 가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대도 종료됐다. 새로운 사회·기술의 맹아를 담은 시범사업을 수행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사회·기술실험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 songwc@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