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과학과 집단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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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과학과 집단지성

KAIST 정재승 교수가 야구팬들과 2011년 11월부터 2012년 4월 12일까지 ‘백인천 프로젝트’를 실행한 바 있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굴드의 4할 타자가 사라진 문제에 대한 가설을 직접 풀어보자는 정재승 교수의 트윗에 반응을 보인 57인의 야구팬들이 한국야구협회 데이터베이스와 관련 야구 기록들을 철저하게 조사, 분석하고 다양한 통계 기법을 적용해 4할 타자의 미스터리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 것이었다.

야구학이나 통계학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적이 없는 이들 일반 시민들은 6개월의 여정 끝에 한국에도 굴드의 가설, 즉 한국 프로야구 전체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안정화돼 4할 타자라는 특출난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가설 증명을 넘어 이 프로젝트는 과학 분야에서도 ‘집단지성’이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적인 통계학 교육을 받지 않았던 야구팬 참가자들은 저마다 야구 관련 사이트, 한국 야구협회 문헌들로부터 데이터 정보를 찾아내고 미출간 문헌들을 뒤져서 한국 프로야구 전체 시스템의 발전을 데이터 통계 분석을 기반으로 입증해냈다. 이 프로젝트는 집단지성이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것이며,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사실 과학 분야에 일반인들이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입증돼왔다. 미국에서는 1890년 이래로 일반 시민들이 기상청에서 일정 훈련을 받고 강우량과 기온 데이터 수집하는 일을 맡아왔다. 오듀본협회의 조류학 데이터베이스도 일반 시민 자원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 수산청에서도 1954년 이래로 어류 개체군 추적을 위해 일반 시민 지원자들과 함께 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아마추어 관찰자가 과학자들과 협업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에 기여하며 미국 과학계의 일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시민의 이런 역할이 인정되면서 공공기관의 지원도 점차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들은 기관 지원으로만 이러한 집단 지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수행하지 않는 분석 작업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시내의 한 시민단체는 ‘후쿠시마 30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방사능 측정기는 한곳에 고정돼 있고 지상에서 3~5m 높은 곳에 설치돼 있어 아이들이 닿는 1m 이하 지역이나 바닥의 방사능 수치는 측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민단체가 직접 방사능 측정에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단체 회원들이 직접 방사능 계측기를 들고 1m 이하 지역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 정부 관측 자료를 보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 일반 시민은 때에 따라서는 전문가에 필적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문가들이 수행하지 못한 일들을 행하기도 한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와 같은 일반 시민들이 갖고 있는 집단지성의 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독일에서는 연방교육연구부 지원으로 ‘시민들이 지식을 만든다-지식이 시민을 만든다(GEWISS)’는 일반 시민들의 과학 활동을 돕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헬름홀츠 환경연구소, 프리드리히 쉴러 예나 대학, 라이프니츠 야생동물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이들 참여 연구소와 일반 시민들이 연구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구 주제를 공동으로 선정하는 것을 지원한다.

과학 분야에 일반 시민들의 집단 지성을 결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처럼 다양하게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 전문가들의 영역으로만 과학 활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제한된 시각이 우리 집단지성의 힘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박진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jiniiib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