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아기 울음 사라진 기술한국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신화수 칼럼]아기 울음 사라진 기술한국

서울대 공대 신입생 17%가 다른 대학 의대 합격을 포기했다. ‘의사자격증=출세’ 등식이 깨지더니 ‘의대 광풍’이 조금 주춤했나보다. 그래도 공대 부활론은 성급하다. 갖은 노력 끝에 기술인으로 성공해도 전문 자격증 보유자보다 못한 삶과 처우에 대한 회의감이 여전히 팽배한 탓이다.

기술인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 서울대, KAIST 공대생마저 의·약학, 법학 계열로 진로를 바꾼다. 자식만큼 다른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이공계 출신 부모에 가장 많다. 한국사회에서 공학은 그저 대학 진학과 임시 취업 방편에 그친다.

기술인 천국이라는 미국도 요즘 자국인 이공계 진학 정체를 걱정한다. 그래도 미국엔 중국, 인도, 한국을 비롯한 해외 이공계 유학생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정착한다. 실리콘밸리도 이들 덕분에 세계 기술 메카 자리를 지킨다.

중국은 세계 기술 메카를 자국으로 옮기려 한다. BATX(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샤오미) 성공을 발판으로 기술창업을 북돋아 미국 주도 기술 리더십을 가져오겠다는 복안이다. 베이징 중관춘과 같은 ‘대중창업공간’을 전국 곳곳에 세우며, 기술창업 생태계 조성에 자금을 쏟아 붓는다.

정책만 보면 한국은 중국에 못지않다.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구축과 기술신용대출 20조원 지원은 파격이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도 감히 대기업과 금융사를 쪼지 못한다. 다만 이 기술창업 생태계가 스스로 동력을 만들지 미지수다.

실리콘밸리, 중관춘처럼 기업 규모를 따지지 않고 수평적인 혁신 풍토가 없다. 만연한 갑을문화로 벤처 성공 한계가 뻔하다. 기껏 성공해도 대기업에 빌붙는 정도다. 기술과 회사 지분을 제값에 팔지도 못한다.

창업가도 이제 대박 꿈을 꾸지 않는다. 10여 년간 벤처 성공 모델이 거의 없다보니 ‘밥 먹고 사는’ 소박한 꿈을 꾼다. 창업 설렘보다 취업난 탈출 안도감이 크다. 물론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노리는 야심가가 없지 않다. 그런데 이들이 성공해도 한국보다 외국 벤처생태계를 더 살찌운다.

판교나 G밸리는 입지, 기업 밀집도로 보면 외국 유수 혁신 클러스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판교밸리는 세계 게임 산업 메카로 손색이 없다. 다만, 세계에 없는 게임규제를 일삼는 나라에 있다는 게 함정이다.

발전은 경쟁의 산물이다. 참여 인구가 많을수록 경쟁이 더 활발하다. 음악과 드라마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몰려 치열히 경쟁하면서 한류로 발전했다. 기술벤처가 미래 한국경제 엔진이 되려면 참여 인구가 늘어 경쟁이 더 치열해져야 한다. 중국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벤처 3만개를 돌파했으니 겉모습은 갖췄다. 그런데 생계형 창업만 는다. 젊은 인재가 기술인 삶보다 의사, 약사, 변호사, 선생, 공무원과 같은 안정된 직업만 좇는다. 기술인도 몇 안 되는 대기업만 바라본다.

저출산이 유독 심한 한국이다. 미래 기술인 풀이 갈수록 준다. 농촌에서 사라진 아기 울음이 외국 신부들 덕분에 다시 들린다. 이민법을 바꿔서라도 한국 유학생을 비롯한 외국인 인재가 판교, G밸리, 대덕연구단지에서 더 많이 일을 하도록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개방성이 ‘아시아 실리콘밸리’ 주도권 다툼에서 중국을 이길 힘이 될 수 있다. 정작 판교, G밸리에서 10여 년간 기술을 갈고닦아 검증된 중소벤처기업은 갓 나온 대학생 창업기업보다 정책 지원과 관심을 덜 받는다. 소리 없는 흐느낌만 가득한 기술한국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