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OECD 세계과학정상회의를 변화의 모멘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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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산책]OECD 세계과학정상회의를 변화의 모멘텀으로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춘들에게 던지는 화두로 흔히 쓰이는 대목이다. 새가 껍질을 깨고 나올 때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처럼, 청춘의 고뇌를 벗어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정부 출연연구기관도 지금 ‘제2의 청춘기’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시대의 국가 과학기술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은 ‘과학기술입국’ 목표를 통해 우리나라의 고속 성장을 이끈 커다란 동력이 됐다. 이 중심에는 국가 R&D를 수행한 출연연들이 있었다. 출연연이 흘린 땀은 크고 작은 성과로 나타났고, 그 성과들은 헤세가 찬양한 찬란한 청춘처럼 빛났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영원히 빛나기는 어려운 법이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에서 출연연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많은 이들은 출연연이 지난날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응답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요구한다. 공고한 껍질 속에 있던 출연연은 이제 오래된 껍질을 깨야 하는 순간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 국가 R&D 투자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액 비중 4.39%로 세계 1위다. 그럼에도 ‘과학기술무역수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국가 R&D 투자에 대한 효율성이 결코 높지 않은 것이다. 이제 출연연을 비롯한 국가 과학기술 투자 방식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더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와 있다.

여러 선진국가의 국가 R&D는 주로 과학기술을 통한 제조업 혁신과 사회 현안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범부처 ICT R&D 프로그램인 ‘네트워킹 정보기술 연구개발(NITRD)’과 3D프린팅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 혁신 국가 네트워크 법령’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디지털 사이언스’를 사회현안 해결 및 혁신의 핵심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호라이즌 2020’에 무려 800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일본 역시 2013년부터 재해 예방, 경제 성장 등의 현안을 ICT로 해결하기 위해 ‘액티브 재팬(Active Japan) ICT’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 국가 R&D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가 R&D 전 주기에 걸쳐 중소·중견기업 지원을 늘려가고 있고, 융합연구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나 생활밀착형 기술 개발을 위해 서로 다른 출연연이 힘을 모으기도 한다.

KISTI도 과학 데이터와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치매 예방 연구 지원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풍수해 대응을 위한 의사결정 지원체제를 구축하는 등 국민행복 증진을 위한 보다 실용적인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 제조업 혁신을 위해 중소·중견기업에 슈퍼컴을 활용한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기술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출연연의 노력과 우리 국가 과학기술의 현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행사가 오는 10월 대전에서 열린다. 바로 OECD 가입국의 과학기술 장관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과학정상회의’다. 향후 10년간의 세계 과학기술정책 방향을 논의하고 현재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로서 세계 각국의 혁신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동시에, 우리의 과학기술을 널리 알리는 과학기술외교의 장이 될 것이다. 국가 R&D 혁신을 준비 중인 우리 과학기술계에게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점검하는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출연연의 연구개발 방향은 각 기관의 기본 임무를 유지하는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기대하는 시대적 요구에도 부합해야 한다. 나 역시 한 출연연의 수장으로서 국가 과학기술 진흥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shhahn@kis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