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산업·통상의 엇갈린 단골 메뉴

[관망경]산업·통상의 엇갈린 단골 메뉴

‘단골 메뉴’라는 말이 있다. 음식뿐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를 통칭한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나오는 투기·병역 논란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정부 정책에도 단골 메뉴가 있다. 가령 연구개발(R&D) 정책이라면 출연연 개편이 단골 메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단골 메뉴가 있다. 기업 투자 프로젝트다. 주요 산업정책 자료가 나올 때면 ‘대기업, OO조원 규모 투자 착수’가 따라붙는다. 올 초 대기업 투자간담회와 최근 수출 대책 발표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식상한 메뉴지만 대기업이 투자하면 후방 중소기업에 새로운 수요가 일어나고, 일자리도 창출되니 나쁠 게 없다.

문제는 같은 식당에서 엇갈린 단골 메뉴가 나올 때다. 어떤 메뉴는 설탕을 넣어 맛있다고 하고, 다른 메뉴는 설탕을 넣지 않아 몸에 좋다는 식이면 문제가 있다.

산업부 출범 이후 통상 협상 결과 발표 때마다 지적되는 것이 제조업 분야 이익 미흡이다. 디스플레이나 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목에서 공세적 이익을 취해야 하는데 매번 기대에 못 미친다.

이 같은 지적에 산업부 단골 메뉴는 “우리 제조기업이 이미 해외 생산체제를 잘 갖췄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다. 지난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때도, 지난주 정보기술협정(ITA) 잠정 타결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산업부인데 산업정책 파트는 대기업 국내 투자를 이끌어냈다고 강조한다. 통상 파트에서는 반대로 대기업 해외 생산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메시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정부를 믿고 국내 설비 투자를 늘리겠나.

산업부 산업·통상 정책의 두 가지 단골 메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글로벌밸류체인(GVC)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다만 당장 눈에 쉽게 보이는 것을 따로 얘기할 게 아니라 한 바구니에 넣고 고민해보라는 얘기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