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과학한국은 아직 목마르다

1965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 파병 대가로 한국에 10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한다. 지금 환율로 따져도 엄청난 돈이지만 꽃다운 우리 청년들 목숨값이었으니 허투루 쓸 수는 없는 소중한 돈이었다.

[과학산책]과학한국은 아직 목마르다

많은 국민이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그 돈으로 곡식을 사서 나눠주는 대신 서울 홍릉에 과학기술 연구소를 세웠다. ‘물고기를 사주는 대신 낚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굴하지 않았다.

이 연구소는 오늘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됐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원동력이 된 각종 과학기술 산실이자 요람들이다. 아직도 홍릉 KIST 입구에는 ‘이 시설은 미국 정부의 원조로 세워졌다’는 푯말이 서 있다. KIST 대강당도 당시 미국 대통령 이름을 딴 ‘존슨 강당’이다. 원조를 받은 안타까운 역사지만 그 위에 우리가 일궈낸 오늘을 보면 부끄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역사다.

지난 50년간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굳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됐고 반도체, 스마트폰, LCD 등 최첨단 분야에서 한국산 제품이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1965년에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냉철하게 바라보면 국제사회에서 ‘제품’이 아닌 과학강국으로서 한국 이미지는 아직 충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개발도상국들로 국한돼 있다. ‘경제성장을 위한 디딤돌로서 과학기술 활용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벤치마킹 모델일 뿐 아니라 ‘존경받는 나라’여야 한다. 이는 결국 외교력에서 나온다. 국제사회 여론을 앞장서서 이끌고, 국제사회의 모범이 돼야만 존경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대전에서 열리는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는 한국이 존경받는 과학강국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과학정상회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년에 한 번씩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만 열던 회의였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파리 밖에서 열리는 행사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창조경제 핵심 성과들도 과시할 수 있다. 선진국은 각종 어젠다를 주도하는 한국의 과학기술을 다시 보게 될 것이고, 우리를 배우려는 개발도상국들은 자신들의 벤치마킹 모델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과학정상회의에서 채택될 ‘대전선언문’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세계 과학기술 외교사에 과학한국과 대전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되게 할 것이다.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과학정상회의에 국민적 역량을 결집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에는 한국 과학기술을 제대로 모르는 나라가 많다. 이번 과학정상회의를 기회로 과학기술 강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아직 한국 과학은 목마르다. 그리고 창창한 길이 남았다. 대한민국 미래 50년을 위해 과학정상회의를 또 다른 발판으로 삼아보자.

이부섭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bslee@kof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