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우리 안의 `카운트 바디 시계`, 텔로미어

2011년 개봉작 `인 타임`(감독 앤드류 니콜)은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사회상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은 25살이 되면 노화를 멈추고, 팔뚝의 `카운트 바디 시계`에 남은 시간만큼 살아간다. 커피 1잔은 4분, 권총 1정은 3년, 스포츠 자동차 1대는 59년 등 모든 경제활동은 시간으로 이뤄진다. 시간이 고갈된 사람은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사이언스 인 미디어]우리 안의 `카운트 바디 시계`, 텔로미어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실제 우리 몸속에서도 `시간의 경제학`이 진행 중이다. 세포분열이 진행될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지게 되고 이는 노화와 죽음으로 이어진다. 영화 `인 타임` 인물들이 살아가기 위해 시간을 지불하는 것처럼, 세포들도 하루하루 시간을 소진해가는 셈이다.

영화의 한 장면. `카운트 바디 시계`
영화의 한 장면. `카운트 바디 시계`

텔로미어는 그리스어 `텔로스(끝)`와 `메로스(부분)`의 합성어로, 염색체 말단의 염기서열 부위를 말한다. 세포분열이 진행될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짧아지지 않는다. 이 `노화점`에서 세포분열은 멈추며, 신체 기관은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이것이 노화 과정이다.

`인 타임`에서 몇몇 억만장자가 영생을 누리는 것처럼, 세포 노화도 평등하지 않다. 암세포는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아 무한증식이 가능하다. 이는 `텔로머라아제`라는 효소 때문이다. 미국의 엘리자베스 블랙번 박사, 조스택 교수, 캐럴 그라이더 교수는 염기를 다시 붙여 텔로미어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인 `텔로머라아제`를 찾아냈다.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노벨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단세포 생물이 늙어죽지 않는 이유도, 텔로머라아제가 분열할 때마다 줄어드는 텔로미어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체 정상 세포에는 대부분 텔로머라아제가 없으며, 이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세포분열 횟수도 줄어든다. 신생아 체세포는 약 80~90회 분열하지만, 70대의 체세포 분열횟수는 20~30회에 그친다. 나이가 들수록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이유다.

영화 속 주인공이 시간은행을 털어 빈민들에게 시간을 나눠줬듯, 소수가 독점한 텔로머라아제를 정상세포에 적용할 수 있다면 수명 연장을 꿈꿀 수 있다. 암세포는 통제력을 벗어나 분열하다가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순간, 텔로머라아제를 만드는 유전자를 발동시킨다. 정상세포에서도 이 같은 작동이 가능해진다면, 주름 걱정을 할 필요도 없으며 상처도 어릴 때처럼 금방 아물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세상을 그려보기에 영화 속 한 대사가 마음에 걸린다.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거야.”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