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피그말리온과 판교

[프리즘]피그말리온과 판교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게 있다. 타인에 대한 기대나 관심으로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다.

그리스 신화에서 조각 솜씨가 뛰어난 피그말리온은 실물 크기의 여인상을 만들었다가 너무나 예쁜 나머지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다. 피그말리온은 여인상에 갈라테이아라고 이름을 붙인다.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 여인상 같은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그의 마음을 헤아린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지난 2004년 12월 30일 판교신도시 실시계획 승인이 난지 12년이 흘렀다. 허허벌판이던 판교는 2009년 파스퇴르연구소가 준공한 것을 시작으로 빠르게 빌딩과 사람들로 자리가 채워졌다. 2012년 634개이던 기업은 지난해 기준 1100여개로 70% 이상 늘었다. 임직원 수도 3만800명에서 8만여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54조원이던 기업 매출은 70조원을 훌쩍 넘겼다.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실현했다. 양적 성장이 다소 주춤하지만 스타트업과 벤처가 핀테크,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첨단 바이오산업 곳곳에서 혁신 주체로 떠오르며 질적 성장을 꾀하고 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를 비롯해 경기콘텐츠허브, 글로벌연구개발(R&D)센터, 글로벌게임허브센터, 핀테크지원센터, 이노밸리 등 지원 기관이 자리 잡으면서 질적 성장을 이끈 것이다.

아쉬움도 남는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자유분방함과 유연성이란 문화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 실리콘밸리가 벤처의 신천지가 된 것은 단지 양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서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 이런 점에서 판교테크노밸리는 오히려 초기보다 자율성이 못하다는 지적도 종종 나온다. 꿈을 찾아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비록 신화지만 피그말리온이 자기가 만든 조각상을 현실의 여인으로 바꾼 것은 간절함에서 비롯됐다. 판교가 실리콘밸리를 뛰어넘는 벤처 신천지가 되길 여러 사람이 간절히 원한다면 현실의 갈라테이아로 바뀌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