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 <2>스피치 불안감 극복기

후배 P는 명문대를 나왔다. 멋진 광고기획사에 다닌다. 나이에 비해 승진도 빨랐다. 능력과 외모도 출중하다.

그에게는 심각한 약점이 있다. 스피치 불안감이다. 사람 앞에만 서면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눈동자는 불안하고, 손과 다리는 후들거린다. 얼굴은 왜 이리 빨개지는지. 심장은 터지고, 머리카락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머릿속은 이미 백지장이다.

회사에서는 아이디어맨이지만 고객이나 직장 동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만 하면 꼴이 말이 아니다. 입 안에서 말이 맴돈다. 며칠 동안 준비한 시나리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엉뚱한 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온다. P는 학창 시절에 발표할 때면 결석할 궁리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사람 앞에 서는 순간이라고 고백한다.

그가 승진을 앞두고 나를 찾아왔다. 프레젠테이션 기회가 많은 팀장이 되는 만큼 스피치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P처럼 스피치 불안감에 빠진 학생이나 직장인이 많다. `스피치 불안감`은 스피치를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되며 나타난다. 숨이 가쁘고, 몸이 굳어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표나 연설 자리를 피해 다닌다. 행여 스피치 기회가 생기면 며칠 전부터 불안해 하며 식음을 전폐한다.

스피치 불안감은 말주변이 없는 특정인에 한해 발생하는 증세가 아니다. 공포감은 누군가 `나의 발표를 평가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생긴다. 누군가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불안할 이유가 없다. 원인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

선거 연설은 유권자 표로 평가받는다. 기업 내 프레젠테이션은 과제 선택, 예산 확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유권자 심판, 과제 선정, 학점과 관계가 없다면 발표 때 떨지 않아도 된다.

스피치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불안`을 자신만이 느끼는 것으로 착각한다. 듣는 이에게 좀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클수록 불안감은 증폭된다.

그러나 겉으로 침착해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불안감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도 청심환을 먹고, 소리를 지르고, 화장실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윈스턴 처칠은 연설 전 긴장감을 “배 한가운데에 얼음덩이가 놓여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로마의 연설가 키케로도 “스피치만 시작하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모든 팔·다리, 심지어 머릿속까지 모두 떨린다”고 고백했다. 달변가에게도 스피치 전조 증세는 통과의례인 것이었다.

스피치 불안감을 완전히 극복할 방법은 없다. 불안감을 제거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관리, 조절 대상으로 여기자. 그리고 많이 해보면 된다. `경험`이 유일한 처방전이다. 자주 나서서 스피치하면 여유가 생긴다. 여유는 환경과 상황에 익숙해졌을 때만 생겨난다. 격려나 위안도 해법이 아니다. 생소하고 낯선 상황에 직면하면 인간은 경계 모드로 전환된다. 그냥 스피치에 자신을 자주 노출시켜서 그 현장을 `일상`으로 만들면 된다. 악몽 같은 순간을 피하지 말고 부딪치면 `일상`이 된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그곳은 매일 접하는 `일상의 일터`이기 때문이다. 낯선 상황이나 공포 환경을 익숙하게 만들면 내 집 화장실만큼이나 편안해진다.

미국 코넬대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는 연극무대에서 조명 받는 주인공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와 행동에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의 시선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조명효과(spotlight effect)를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타인의 외모나 행동을 기억하지 않는다. 청중은 당신이 불안해 하는 것을 느끼든 못 느끼든 우리가 신경 쓰는 것보다 빨리 잊는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나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타인의 시선` 따위는 잊자.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