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공각기동대

[사이언스 인 미디어]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는 유명 애니메이션이라서 새삼 다루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시간 배경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2029년이다.

요즘 말로 치면 유선과 무선 인터넷이 안 깔린 곳이 없고, 사물인터넷이 널리 보급돼 네트워크로 연결되지 않는 게 없는 세상이다.

심지어 사이보그 기계인간마저 네트워크에 연결되는데, 사람과 사이보그 경계가 희미해질 정도다.

사건은 네트워크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해커 `인형사`가 등장하며 시작된다.

인형사를 잡기 위해 특수부대 `공각기동대` 소속 쿠사나기 소령이 투입된다. 그는 뇌의 일부만 실제 인간이고 나머지는 기계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 가운데 하나는 인형사가 공각기동대에 잡혀온 이후다.

사실 잡혀온 것은 어느 인체 모형인데, 그 안에 인형사가 들어있다. 인형사는 다름 아닌 네트워크 속을 유령처럼 떠도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아무런 실체도 없는 프로그램이자 소프트웨어, 0과 1의 조합에 불과한 인형사는 놀랍게도 당당하게 주장한다.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주장한다.”

공각기동대가 1995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임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미래를 꿰뚫어본 대사인지 알 수 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가 개화하려는 시점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것이 얼마나 섬뜩한 대사인지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컴퓨터 프로그램이 정체성을 갖고 자신이 하나의 생명체임을 주장하는 순간이야말로 인간과 로봇의 불화가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인형사 주장에 대해 수사관들은 “너는 한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한다. 인형사의 대답이 걸작이다.

“인간 DNA도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DNA는 결국 `기억`이라는 것인데, 기억을 외부화한 컴퓨터의 발달은 `새로운 생명체`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은 지구 위를 떠돌지만 `새로운 생명체`는 네트워크의 바다를 떠돈다는 것.

20년 전이었다면 공상과학 영화에 불과하다고 치부했을지 모르지만 제4차 산업혁명 현장에 사는 처지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AI나 로봇 등장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막연한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듯하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AI나 로봇과는 전혀 다른,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놓는 게 좋지 않을까. 컴퓨터 프로그램이 생명체임을 주장하는 날이 오기 전에.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