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부·업계가 함께 이룬 해외 에너지 규제 완화

[기고]정부·업계가 함께 이룬 해외 에너지 규제 완화

해외 국가의 규제 요구 사항이 고도화되고 다른 국가와 상이한 규제를 독자 채택하는 국가가 많아지면서 기업 부담이 증대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술 규제나 표준 제정에 일정한 원칙과 의무를 부과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통해 회원국 간 자유무역을 장려하고 있지만 아직도 규제 대응의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자국 법규 제도를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법규 이행을 위한 제도와 인프라에 대한 사전 공유가 부족한 상태로 규제를 시행, 국내 수출 기업들이 대응하는데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자제품 에너지효율 규제가 그 가운데 하나다.

전자제품의 에너지효율 규제는 점점 강화돼 현재 전 세계에서 매년 100여건의 신규 제정 또는 개정되고 있다. 이는 미국·중국·유럽 이외 동남아, 중동, 남미 등 개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국가들은 다른 국가와 달리 규제를 독자 제정하고, 법령 공표 후 즉시 시행하는 사례가 있어 수출 기업들의 대응이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기업이 해당 정부에 애로 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현지 채널이 부족하고, 단일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법규 개선을 직접 건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비관세 무역기술 장벽 규제와 관련된 애로 사항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와 산업계의 공동 대응이 중요하다. 다행히 국내에서 국가기술표준원이 중심이 돼 정부 산하 시험기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등과 기업들이 협업해서 전자제품 에너지효율 규제 파고를 잘 헤쳐 나가고 있다.

한 예로 2013년에 시행된 베트남의 전기전자 제품 에너지효율 규제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을 대상으로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거치고 있었다. 제품에 에너지등급 라벨을 부착하기 위해서는 평가성적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발행할 수 있는 평가시험소를 정부가 지정한 현지 시험소로 한정했다. 이 때문에 베트남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현지로 시료를 보내 시험을 진행해야 했다. 이는 제품 배송과 통관 절차로 인한 인증 기간이 1개월 이상 더 길어지고,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또 베트남 현지 생산품의 성적서 유효 기간은 2년이지만 수입 제품에 대해서는 6개월마다 성적서 갱신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삼성, LG, 동부대우전자 등 국내 주요 수출 기업들은 국표원에 해당 법규 대응 애로 사항을 전달하고 베트남 정부에 건의할 규제 완화 논리를 함께 정리했다. 또 국표원 책임자들이 베트남 당국을 방문, 규제 완화를 정식 요청했다. 드디어 올 1월 말 베트남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던 우리 기업들에 요청 사항을 대부분 받아들이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통보됐다. 베트남 현지 이외 국제 공인시험소 인정, 성적서 유효 기간 철폐 및 정부 인증 삭제 등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은 신규 제품의 시험 및 인증 기간을 한 달 정도 줄이고 매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시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전자제품 에너지효율 규제와 같이 우리 기업의 수출에 장애가 되는 비관세 기술 장벽이 아직 각국에 산재하고 있어 이번 베트남 사례와 같이 민·관이 협력해 해당 국가에 합당한 대안을 제시해 개선하는 활동을 다각도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국표원은 2012년부터 국내 수출 기업, 전자 산업 협회, 정부 산하 시험소와 함께 민·관 컨소시엄을 구성해 불합리한 해외 규제 개선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올해에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제품 및 기술 관련 신규 규제 시행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표원과 정부 유관 기관들이 기업들과 힘 및 지혜를 모아 베트남 규제 개선과 같은 성공 사례를 다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영진 삼성전자 글로벌CS센터 제품환경팀장 youngjin.suh@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