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노믹스]<칼럼>국내 특허법 손해배상 관련 법 개정의 '득과 실'

이진혁 특허법인 IPS 파트너 변리사
이진혁 특허법인 IPS 파트너 변리사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허 침해 소송의 손해배상 관련한 규정이 지난해 6월 30일 시행됐다. 특허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특허 가치 판단(제품 관련성 및 특허 유효성)을 바탕으로 매기는 손해액 산정의 기초가 되는 규정을 개정한 것이 뼈대다. 늦은 감이 있지만 실무자 입장에서 해당 조항의 중요성이 크다고 판단돼 규정 시행의 득과 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존 특허법 132조(자료제출명령제도)에서 법원은 침해 소송 시 손해 계산에 필요한 서류 제출을 소송 당사자에게 명령할 수 있으나,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서류 제출 거절이 가능하다는 예외를 뒀다. 하지만 개정법은 해당 서류를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법원 자료제출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상대방(주로 원고) 주장이 맞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기업 영업비밀이라도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면 사실상 제출을 강제한다.

개정된 특허법은 미국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일부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정식 재판 이전에 원고와 피고가 서로의 증거를 상호 공개해 사실관계를 정리한다. 실체적 진실에 따른 올바른 판단을 위해 원고만 가진 증거와 피고만 가진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 특허 소송 절차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액의 소송 비용 역시 많은 부분이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쓰인다. 미국에서 조 단위 손해배상액이 나올 수 있는 이유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으나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손해배상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중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 민사소송법도 침해 입증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는 원칙 아래 예외적으로 민사소송법 344조(문서제출명령) 등을 통해 미국 디스커버리에 준하는 규정이 있으나 해당 문서가 특정 비밀에 해당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어 활용도가 떨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손해배상 관련 법 개정은 특허 소송에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고 국내 특허 시장을 키우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을 만하다. 특허 소송에서 침해성, 유효성 등 특허 가치를 정확히 판단해 악의적인 침해자로부터 특허권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게 한다면 국내 지식재산(IP)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 입장에서 손해배상 산정의 기초 자료 대부분이 높은 수준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개정법은 손해액 산정에 필요하면 영업비밀이라도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서 제외해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도록 했으나 '반드시 필요한 경우'로 한정해 그 기준이 모호하다. 개정법에서 제출을 강제하는 자료는 기업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이기에 우려가 된다.

따라서 자료 제출 강제는 △원고의 입증책임 정도 △시장에서 확보 가능한 자료 대체 가능성 △기업 핵심 경쟁력인 가격정보 유출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자료 열람 인원이 비밀을 누설할 경우 제재 수단을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입증 책임 전환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다른 민사 소송과 비교해 유독 특허 소송만 원고에게 특혜를 준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질의 특허가 정당하게 사용돼 높은 손해배상액이 현실화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특허관리전문회사(NPE)가 활개를 친다면 썩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NPE가 특허 활용 측면에서 IP 업계에 일정 부분 일조했지만 수익이 연구개발(R&D)에 재투자되는 비율이 낮다는 점에서 IP 현금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물론 대학 및 신규 IP 창출을 위해 재투자를 지속하는 일부 NPE는 예외다.

변경된 손해배상 관련 법 규정이 특허권자에게 정당한 보상과 기업체 핵심 비밀을 보호해야 한다는 다소 상반된 입장에서도 원칙과 중심을 명확히 세워 시행되기를 바라며 국내 특허 시장을 한 단계 높일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본 규정이 적용된 특허 소송 판례를 통해 사실관계의 적극적인 규명, 절차적 미비점의 개선을 지켜보며 활용하고 보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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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혁 특허법인 IPS 파트너 변리사 chanceaga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