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8>다락방 문고의 추억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8>다락방 문고의 추억

어머니는 생일에 크리스마스에 심지어 명절에도 책을 선물했다. 친구의 발레복을 닮은 쉬폰 원피스를 입고 싶고 신상품 콤비구두를 신고 싶었다. 그 마음을 몰라주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책을 선물했다. 어머니가 계를 타서 큰 마음 먹고 사주신 책은 50권짜리 광음사 세계동화명작전집이었다.

보물섬, 작은 아씨들, 엉클 톰스캐빈, 암굴왕, 해저 2만리, 잔다르크, 로빈슨 크로소우까지…한 권을 다 읽으면 50원을 주셨다. 10권을 읽어야 500원을 모았다. 한 달에 한 번 500원을 가지고 학교 옆 떡볶이 집으로 달려갔다. 자축 책거리였다.

어머니의 책 욕심은 끝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어머니 손에는 노끈에 묶인 열권 정도의 책이 들려 있었다. 청계천 헌책방에 다녀온 것이다. 책은 다락방으로 향했다. 다락방은 우리 집 남매들의 도서관이었다.

다락방은 어른이 허리를 반쯤 굽히고 초등생인 나는 고개를 까딱 숙여야 겨우 설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지붕 밑 다락방은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웠다.

한 여름 다락방은 요즘 찜질방만큼 더웠다. 땀이 종이 책 위로 뚝뚝 떨어졌다. 책을 읽지 않으면 간식도 용돈도 주지 않았던 어머니의 계산이 남매간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언니와 나는 이불 속에서 '왕자와 거지'를 두고 니편 내편을 가르곤 했다. 언니는 작은 아씨들, 소공자, 소공녀 등에 감명했고 나는 암굴왕과 잔다르크, 보물섬에 매료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우리는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했다. 그곳에도 다락방이 있었다. 큰 집으로 이사했대도 식구가 많아서 서재는 여전히 엄두를 못 냈다. 그 많은 책은 하는 수 없이 언니와 내가 함께 쓰던 2층 다락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창문이 없어 마치 어두컴컴한 창고 같았다. 백열등을 세 개나 달고서야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친구가 “이건 읽어 봤어?”하며 내민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과 DH 로렌스 작 '차타레 부인의 사랑'은 다락방에서 읽은 마지막 책이었다. 은밀한 성인소설을 읽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새 집 다락방 문고는 명이 짧았다. 다락방에 쥐가 나타나면서 어머니는 그곳을 폐쇄했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8>다락방 문고의 추억

장마가 길었던 어느 여름, 어머니는 푸른곰팡이가 슬고 쥐에 뜯긴 책들을 마당으로 꺼냈다. 어머니는 헌책방 아저씨를 불러 낡고 오래된 책은 가져가라 했다. “잠깐만요!” 소리치며 동생은 가을 단풍잎과 은행잎을 갈피에서 골라냈다. 언니는 숨겨놓은 비상금을 찾느라 책과 이별하는 시간을 지체했다. 나는 성인소설을 몰래 허리춤에 감추었다.

어머니는 책을 통해서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길 원했다. 숨 막히는 모험의 세계와 전쟁의 참혹함,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도 책을 통해서 배웠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참과 그릇됨을 가르친 곳도 우리 집 다락방 문고였다. 일목요연한 독서 리스트는 아니었지만, 어머니 식 '마구잡이' 독서가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먼지 나는 헌책방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아이들이 읽지 않은 책을 고르고, 그중에 교훈이 될 만한 것을 고르느라 얼마나 고민했을까. 무더운 여름날 무거운 책을 들고 버스를 타고 다니던 일은 또 얼마나 고됐을까. 훗날 알았다.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두 손에 들린 책보다 무거웠을 거란 것을.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38>다락방 문고의 추억

헌책방 아저씨가 리어카에 담아간 50원짜리 떡볶이의 추억과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모험, 차타레 부인의 사랑과 욕망이 그립다. 가을이다. 유년시절 다락방에서 들창문을 통해 보았던 푸른 하늘이 유독 그립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