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DMB와 개도국 모바일TV

[리더스포럼]DMB와 개도국 모바일TV

2002년 정보통신부가 지상파DMB(DMB) 기본 계획을 내놓으면서 시작된 DMB 서비스는 2011년 광고 매출 236억원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탔다. 서비스 초기에 유료화가 되지 않으면 양질의 콘텐츠 공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논쟁이 뜨거웠지만 무료로 출범한 것이 원인의 하나로 보인다. 2013년을 기점으로 롱텀에볼루션(LTE)이 보급되면서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중심이 이동통신이나 와이파이망 쪽으로 옮겨간 것도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모바일 UHD방송까지 더해지면 DMB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은 상황이 다르다. 개도국에서 스마트폰이 젊은층 중심으로 급격히 보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LTE와 같은 이통망을 이용해 모바일TV를 시청할 수 있는 계층은 극히 제한된다. 대도시 위주로 설치된 LTE망, 한정된 전송 용량, 고가 데이터통신 요금 등으로 고소득층 이용자 외에는 국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 서비스로 제공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DMB는 방송형 서비스로써 송신 설비만 갖추면 전파가 도달하는 모든 장소에서 수신할 수 있다. 저렴한 송신 장비 하나면 웬만한 도시 전체를 커버할 수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LTE 등 고속 모바일인터넷망이 없어도 DMB폰 소지자라면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영상 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개도국 입장에선 DMB 수신 단말기 확보가 관건이다. 개도국 스스로 단말기를 생산할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안은 뭘까? 우리 기업이 생산한 DMB 피처·스마트폰이 대부분 개도국에는 이미 상당수 보급돼 있다. 부족한 부분은 신제품을 수입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다른 대안이 있다. 우리나라 유휴 스마트폰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보급된 스마트폰은 4000만대에 이른다. 중고 회수율은 8%, 교체 주기는 2년 2개월로 매우 짧다. 장롱 속에 잠자고 있는 장롱폰 수는 가구 수(가구당 2.4대)로 환산하면 4300여만대로 4조원 가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장롱 속에서 꺼내 적절한 처리를 거쳐 수출하면 개도국은 저렴한 가격의 DMB폰을, 우리는 유휴 자산 재활용은 물론 처리비용(스마트폰 1대 폐기하는데 물 6만2000리터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있음) 절감과 환경 보전 등 일거삼득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개도국 주파수 관리 당국자가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리 DMB방송 주파수 대역과 같은 주파수 배정이다. VHF 대역인 이른바 아날로그TV 대역 일부를 할애하면 된다. 어느 나라건 주파수 재배정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 개도국은 디지털TV로 전환하지 못했다. 디지털TV로 전환할 때 VHF 대역이 남게 되면 우리와 같은 DMB 주파수를 쉽게 재배치할 수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개도국 단말기 문제는 일거에 해결된다.

우리는 2008년부터 5년에 걸쳐 디지털 전환 사업을 훌륭히 수행한 경험이 있다. 개도국이 원한다면 DMB와 디지털TV 전환 사업을 패키지로 지원할 수도 있다. 이미 정부의 개도국 원조 프로그램에 따라 몽골, 베트남 등 몇몇 나라에서 시도한 바 있다. 몽골은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우리 시스템에 CAS 기능을 추가해 유료 채널 6개를 포함, 10개 채널로 내년 2월에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몽골 전체 인구 300만명 가운데 150만명이 사는 수도 울란바토르의 90% 지역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우리와 동일한 DMB 주파수로 조정해 단말기 개발 부담을 최소화했으며, 우리 DMB폰이 이미 50여만대가 수입돼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간 몽골 여행자가 우리 스마트폰으로 몽골 DMB 방송을 그대로 수신할 수 있다.

DMB 이용자 불만의 하나가 화질이 떨어지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선 HD DMB 서비스를 시작해 이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새로운 HD DMB폰 개발이 필수다. 그러나 시장이 보장되지 않으면 단말기 제조사가 개발을 주저할 것이다. 개도국에선 이러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안으로 영상 압축 손실을 줄여 송출 원화 화질을 개선시키는 시도가 현실성이 있다. 몽골에선 이 방법을 구현하고 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패드와 같은 다소 큰 화면에서도 대체로 선명한 화질로 시청할 수 있도록 개선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DMB는 우리가 독자 개발한 모바일TV 서비스다. 이 시스템을 이통 인프라가 충분치 않은 개도국에 전수해 자국의 모바일TV 시스템을 경제 구축, 자국민에게 보편 동영상 서비스 혜택을 누리도록 해 준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강철희 한국전파진흥협회 상근부회장(고려대 명예교수) chkang@ra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