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의 투명블라인드]SW산업계의 절규

소프트웨어(SW)라는 이 용어는 우리 사회에 1980년대 중·후반 들어 본격 등장한다. 하드웨어(HW)에 대응하는 개념의 컴퓨터 관련 용어로 출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이후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리면서 HW 가치가 떨어지고 SW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SW는 지식·콘텐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SW가 우수하다”는 말은 머리가 좋고 내공이 깊은 사람을 칭찬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껍데기(HW)와 알맹이(SW)'란 표현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SW가 산업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초반이다. 정부는 1990년 정보사회발전 계획을 담은 '정보사회종합대책'을 추진했다. 2000년대 초까지 고도정보사회를 구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우리나라 정보 산업 세계 시장 점유율을 1989년의 2.2%에서 2000년에 두 자릿수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주목할 것은 당시 정부가 “정부 시책을 기존 지시·규제형 정책에서 조장·지원형 정책으로 전환해 민간 중심으로 추진하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관련 정책을 종합해서 범국가 차원의 추진 체계를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선제 대책이고 깊은 인상을 주는 계획이다.

그 당시 SW는 철강, 석유화학 등과 더불어 선진화 주도 20대 산업에 포함됐다. 특히 SW 산업은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인정받아 세금 감면과 SW 단지 조성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지원 정책이 시행됐다. SW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도 그때 시작됐다. 중단기 정책에 힘입어 2000년을 전후해 한국 SW 산업은 성장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SW 산업이 급성장한 것은 2000년 이후다. 우리나라도 이때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을 도입, 강력한 육성 의지를 보였다. 이후 이 법은 수십 차례 부분 개정이 이뤄지면서 누더기법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업계는 지금의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시장 구조 변화로 인해 해당 산업을 마비시키는 법으로 전락했다고 악평하면서 제대로 된 SW산업 진흥법과 정책을 통해 성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계 부처와 산업계는 실제로 행동에도 들어갔다. 협의를 거쳐 그동안 업계가 요구해 온 개선 사항이 반영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전면 개정안이 마련됐다. 4차 산업혁명 선도 및 SW 지식재산권 강화, 원격지 개발, 발주자 역량 강화, SW 우수 인재 양성 등을 위한 법적 근거가 명시돼 있어 SW 혁신 성장 생태계 조성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지난해 취임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SW 산업 현장을 방문하면 10년 전에 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안타까워하면서 규제 개선 및 육성 의지를 밝혀 업계에 큰 기대감을 안겼다. 그러나 장관 의지는 의지로만 그치고 있다.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는다.

국내 SW 기업과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SW 고급 인력은 해외로, 외국계 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국내 SW 업계는 고급 인력을 잡을 여력도, 명분도 없다.

모두가 SW 산업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개정 작업에 착수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법은 국회 법제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정치 현안에 밀려 차일피일 미뤄졌다. 10월 국무회의 상정이 목표지만 연내 통과를 낙관할 수 없다. 업계는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상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또다시 누더기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동안 관련 업계가 요구해 온 개선 사항은 잘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W 산업 육성을 포기할 것이라면 몰라도 육성 의지가 있다면 서둘러 달라.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