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과학자]"환자 맞춤형 항암제 개발" 박지영 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암세포와 주변 세포 간의 상호작용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맞춤형 항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박지영 교수.
암세포와 주변 세포 간의 상호작용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맞춤형 항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박지영 교수.

“비만이나 당뇨 환자는 암에 걸리면 항암제가 잘 듣지 않습니다. 재발이 빈번하고 사망률도 높지요. 비만, 당뇨와 암의 연결고리를 찾으면 보다 효과적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박지영 UN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엔도트로핀'을 매개체로 비만, 당뇨와 상관 관계가 높은 유방암, 자궁내막암, 간암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바이오의생명 과학자다.

박 교수는 “비만이나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이 있는 암환자는 기존 화학요법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암세포와 주변 세포를 동시에 제어하는 '환자 맞춤형 항암제' 개발이 목표”라고 말했다.

비만과 당뇨는 암을 유발하고 악화시키는 고질병이다.

박 교수는 2012년 '엔도트로핀(ETP)'이라는 요주의 물질을 처음 발견했다. '엔도트로핀'은 세포외기질 단백질인 제6형 콜라겐에서 특이하게 잘려져 나온 신호전달물질로 비만이나 당뇨가 있는 지방세포에서 많이 발현돼 세포를 딱딱하게 만드는 '섬유화'와 염증을 키운다.

박 교수는 엔도트로핀이 비만 지방세포에서 크게 늘어나 유방암 전이, 항암제 내성 등 악영향을 미치고, 당뇨병의 한 원인으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악영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간암과의 상관관계를 추적, 엔도트로핀이 간 손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간세포'와 '비 간세포'의 상호작용에 관여해 간암을 촉진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엔도트로핀에서 나오는 신호는 간세포를 파괴했고, 죽은 간세포에서 나온 물질은 비간세포와 상호작용해 염증을 유발, 간 조직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박 교수는 “엔도트로핀에서 나온 신호를 시작으로 '간 세포사멸-섬유화-염증화'라는 악순환이 생기고, 만성 간질환과 간암으로 이어졌다”면서 “엔도트로핀 활성을 억제하는 치료용 항체를 개발해 사용하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은 손상되거나 병에 걸려도 증상이 없는 '침묵의 장기'다. 이런 간 조직에서 엔도트로핀이 많이 발현돼 간염에서 간섬유화, 간경화까지 진행되면 더 이상 손쓰기 어렵다. 그는 “간암으로 발전하면 간 조직의 80~90%를 제거해야 하고 재발 가능성도 매우 높다. 현재로서는 간염이나 간섬유화 단계에서 신속히 치료해 간암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엔도트로핀과 만성 간질환의 상관관계를 밝힌 이 연구는 효과적인 간질환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높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교수는 “지난 100년간 많은 연구자들이 암을 연구했지만 정복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서야 암세포와 주변 세포와의 상호작용 연구가 중요하다는 걸 인식해 관련 연구도 활발해졌다”면서 “암 세포와 주변 세포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치료기술과 환자 맞춤형 표적 암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