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국내 이공계 인재 양성의 든든한 후원자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전자신문DB>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전자신문DB>

# 지난달 18일 한 90세 기업인이 모교인 서울대를 찾았다. 그는 “서울대 공대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해달라”며 사재 500억원을 쾌척했다. 주인공은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겸 해동과학문화재단 이사장. 그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에도 직접 모교를 찾아 기부금 출연 협약을 맺었다. 이번 기부를 포함해 김 회장이 지금까지 모교에 전달한 기부금은 총 657억원으로 서울대 역대 개인 기부 중 최고액이다.

김정식 회장은 '국내 전자산업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195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대덕전자를 설립한 그는 흑백가전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컴퓨터, 반도체, 스마트폰으로 발전하기까지 핵심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 기술 개발과 국산화에 전념하며 회사를 국내 대표 부품업체로 키워냈다.

글로벌 산업계가 4차 산업혁명으로 전환기를 맞는 지금 국내 전자산업 황금기를 만든 김정식 회장의 혜안과 인재 육성 철학,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지난달 18일 서울대 행정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해동첨단공학기술원(가칭) 건립 및 운영기금 출연 협약식에서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오른쪽)이 오세정 서울대 총장. (사진=서울대)
지난달 18일 서울대 행정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해동첨단공학기술원(가칭) 건립 및 운영기금 출연 협약식에서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오른쪽)이 오세정 서울대 총장. (사진=서울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2022년 개관을 목표로 가칭 '해동첨단공학기술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인문계와 이공계 학문간 경계를 허물어 로봇,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 등 융·복합 교육과 연구활동을 수행하는 신개념 공간이다. 센터를 짓는데 김정식 회장이 쾌척한 500억원이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김 회장을 움직인 것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들여 모든 학생에게 AI를 가르치고 다른 학문과 융합시키는 AI 단과대인 '스티븐 슈워츠먼 컴퓨텅 칼리지'를 만든다는 소식이었다. 올해 9월 개교를 앞둔 MIT의 AI 칼리지는 금융회사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의 3억5000만달러 기부를 종잣돈으로 건립이 구체화됐다.

이번 기부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생각보다 빠르고 급격하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찾아와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전체 산업과 국가 간 질서를 재편할 것이 확실시되는데 우리나라 현주소를 보니 학교가 지금의 힘과 속도로는 어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뭔가 해보자는 생각으로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AI 분야에 집중한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AI가 전자산업 핵심 분야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AI가 전자산업 핵심 분야로 일컬어지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AI 인력과 기술,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다”며 “과거 산업혁명에 따라 국가간 부의 격차가 달라진 것 이상으로 앞으로는 AI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하는 만큼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교육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길러내는 것만이 변화될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회장(오른쪽)은 지난해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해동학술정보실 구축기금 5억원을 기탁했다. <전자신문DB>
김정식 회장(오른쪽)은 지난해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해동학술정보실 구축기금 5억원을 기탁했다. <전자신문DB>

김 회장은 오래 전부터 공학 교육과 미래 인재 육성에 관심을 갖고 지난 30년 가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교육 시설을 꾸준히 기부해왔다. 이번 기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1991년 재단법인 '해동과학문화재단'을 설립한 그는 공학도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해동'(海東)이라는 이름은 돌아가신 부친 아호에서 따왔다. 재단 설립 후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해동상이다. 1990년부터 한국공학한림원 등 4개 학회를 통해 총 280여명에게 시상했다. 또 대학생 280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전국 20여개 공과대학 건물에 해동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등 국내 이공계 연구자와 대학의 든든한 후원자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은 “한 평생 전자산업에 몸담으며 전자산업이 국가경쟁력 근간이 되고 인류 발전에도 혁신을 가져오게 된 것을 직접 체험하며 공학도 어깨에 국가와 사회의 미래가 걸려 있음을 느끼게 됐다”면서 “그들이 공부하기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도움을 주고 싶었고 혹시나 공부가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꿈을 접는 학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은 곧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과학인재 양성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배로서 앞으로 사회에 나가 국내 전자산업계에 이바지할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지금까지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하며 이 자리까지 왔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방식을 되풀이해서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면서 “젊은 친구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생각도 다양한 것 같은데 이러한 자질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으로 이어져 미래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주도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2011년 김정식 회장(왼쪽 다섯번째)이 인하대학교 하이테크관 및 2북관에서 개최한 해동학술정보실 준공식 당시 사진. 김 회장의 기부금 3억원으로 조성됐다. (사진=인하대)
지난 2011년 김정식 회장(왼쪽 다섯번째)이 인하대학교 하이테크관 및 2북관에서 개최한 해동학술정보실 준공식 당시 사진. 김 회장의 기부금 3억원으로 조성됐다. (사진=인하대)

김 회장은 인재 양성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외된 자들을 위한 후원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김 회장이 50년 동안 대덕을 경영하면서 마음에 새겼던 '경천애인'(敬天愛人)과 '공동운명체'라는 두 가지 정신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자연 섭리를 따르고 인간을 사랑하며 살라는 공자 가르침은 그의 경영이념이 됐고 자연스레 기부 실천으로 이어졌다. 모든 직원이 자신과 운명을 함께 하는 가족이라는 생각은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이 됐다.

지역사회 후원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2002년에는 '대덕복지재단'을 설립했다. 후원 대상은 크게 저소득 노인과 아동, 저소득 장애인, 장애인 복지로 나뉜다. 명휘원 해동일터와 대덕어린이집을 설립하고 노인시설과 장애인 시설, 외국인 이주노동자 극빈층 무료 진료를 하는 병원도 지원한다.

김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며 기술과 품질을 신념으로 최선을 다한 동시에 기업인으로서 '경천애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면서 “회사를 위해 노력하는 직원에게 마음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왔고 지역사회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위치한 안산 지역은 단기간에 걸친 산업 발전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곳인 만큼 누군가 도움이 많이 필요한 곳이기도하다”면서 “회사가 매년 성장하는 것은 결국 직원과 지역사회 힘이라고 생각해 주변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직원들도 이런 생각을 이해하고 불평없이 봉사 활동에 임해줬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대덕전자는

대덕은 45년 동안 인쇄회로기판(PCB) 전문기업으로 외길을 걸어 왔다. 1965년 대덕GDS가 대덕그룹 모태회사로 설립돼 1972년 PCB 사업에 진출했다. 1972년에는 PCB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대덕전자가 설립됐다. 1972년 한국 우라하마전자로 출발해 일본 기술을 배웠고 1977년 지분을 인수해 대덕전자로 사명을 변경했다. 대덕전자는 국내 전자산업 역사를 그대로 밟아왔다. 라디오나 흑백 TV 부품으로 시작해 현재는 스마트폰과 5G 이동통신 등에 필요한 PCB를 주로 생산하다. 김정식 회장은 “60년대 후반 전자산업 불모지 한국에 PCB 전문기업이 세워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지도 모른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지난해 매출은 5920억원이다.

◇김정식 회장은

1969년 국내에 전자사업 기반이 전무하던 시절 전자산업조사단 일원으로 미국과 유럽지역을 순회한 후 전자사업 핵심 부품인 PCB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발견하고 1972년 PCB 전문업체 대덕전자를 창업했다. 라디오용 단면 PCB에서 시작해 첨단 반도체와 스마트폰용 PCB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PCB 생산에 혼신을 다했다. 2006년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한국 경제발전 숨은 공로자인 '한국을 일으킨 60인의 엔지니어' 중 1인으로 선정됐다. 사재를 들여 1991년 해동과학문화재단을, 2002년 대덕복지재단을 각각 설립하며 사회공헌 사업도 활발히 해왔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