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부 못하면 공무원이나 해라"

[기자수첩]"공부 못하면 공무원이나 해라"

지난주 로봇 분야 국내 유명 제조업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최근 중국을 다녀왔다며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중국 지하철역 얘기로 포문을 열었다. 전철을 기다리다 국가 통치 이념 관련 홍보 문구를 봤다. 내용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업(敬業)'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업가를 공경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기업인을 손가락질하기 바쁜데 타국에 와서 존중을 받게 되니 가슴이 멍해지더라”고 속상해 하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중국에는 기업가를 존경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부모들은 자식이 훌륭한 기업가가 되길 바란다. “공부 잘하면 창업, 못하면 공무원이 돼라”는 말이 흔할 정도다. 청년들도 기대에 부응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중국에는 하루 1만 개 가까운 기업이 창업한다. 나흘에 한 개꼴로 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유니콘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기업가는 인정받지 못했다. 유교 나라 조선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제가 존재했다.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를 최고로 쳤다. 상인은 장사치로 매도하고 가장 천한 신분으로 분류했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부모들은 여전히 학문을 갈고 닦는 교수, 교사가 되거나 국가에 녹을 먹는 공무원이 되라고 자식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면 장사나 해라”고 훈계하기도 한다. 사회 분위기도 기업가에 대한 부정 여론을 북돋운다. 영화, 드라마 속 기업가는 대부분 악역을 맡는다. 반(反)기업 정서를 부치기는 셈이다. 언론도 기업가 미담에는 큰 관심이 없다. '갑질'과 같은 도덕성 해이를 보일 때만 벌떼처럼 달려든다.

기업가를 향한 따스한 시선이 필요하다. 기업이 흑자를 내지 못하면 나라 살림도 붕괴된다. 일부 기업가의 일탈을 전체 잘못으로 매도, 기를 꺾어선 안 된다. 1998년에 소떼를 끌고 방북, 금강산관광의 물꼬를 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에서 최근 100억원 기부 약속을 지킨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까지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기업가가 무수히 많다. 이들이 신바람을 내며 과감한 도전에 나설 때 지금의 경제 위기를 가뿐하게 극복할 수 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