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칼럼] 국내 특허법 증액손해배상제도에 담긴 영미법 법리 전개

이주환 특허법원 국제지식재산권법 연구센터 연구원
이주환 특허법원 국제지식재산권법 연구센터 연구원

이주환 특허법원 국제지식재산권법 연구센터 연구원

지난 1월 8일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 대한 규정이 제정돼, 최근 시행됐다.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8항과 제9항은 크게 “고의적인 특허침해행위”에 대해 “3배”이내의 범위에서 “8가지의 정황증거”를 고려해 증액손해배상이 인정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는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를 모델로 하여 도입된 것으로, 현재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액이 소액으로 산정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타개해, 궁극적으로 우리 특허법이 목적으로 하는 혁신을 통한 산업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제도도입 이전 국내 많은 학자들은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이전보다 고액의 손해배상액이 산정돼, 특허침해를 당한 특허권자를 충분히 구제할 수 있고, 특허발명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으며, 잠재적인 침해자의 특허침해행위를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대륙법체계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와 영미법상의 징벌적인 손해배상제도가 맞지 않고, 헌법상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적인 주장이 많았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가 현실적인 필요성을 이유로 도입되었다. 그러면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효율적 운영을 토대로 성공적인 제도가 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3번의 시리즈로 이루어지는 본 칼럼에서는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모델이 되고 있는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법리를 자세히 분석, 효율적인 실무적 운영방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 칼럼에서는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 관한 법리와 역사적 전개과정을 다루고, 두 번째 칼럼에서는 미국법원이 증액손해배상을 인정하기 위한 정황증거로 채택하고 있는 9가지의 Read Factors와 우리 법의 8가지 정황증거를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칼럼에서는 두 칼럼이 비교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효율적인 실무적 운영방안에 대해 필자의 사견을 개진한다.

우선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법리와 이에 대한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본다.

미국 지방법원은 미국 특허법 제284조에 근거해 일실이익과 합리적인 실시료에 의해 산정된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을 재량으로 3배까지 증액할 수 있다. 이를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미국법원은 고의침해(willful infringement)에 대하여 “willful” 이외에도 “wanton”, “malicious”, “bad-faith”, “deliberate”, “consciously wrongful”, “flagrant” 등의 행위묘사와 함께 증액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법리를 확립했다.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는 고의적으로 특허권을 침해한 자에 대한 징벌적인(punitive) 의미가 있어, 침해자의 특허침해행위에 비난가능성(culpability or egregiousness)이 존재하는 경우에 인정돼야 한다는 법리가 확립돼있다. 미국에서 고의침해에 근거한 증액손해배상의 산정은 2단계 과정을 거친다. 우선 배심원(jury)이 제1단계로 침해자의 행위가 고의침해에 해당하는가의 여부를 판단하고, 지방법원 판사가 제2단계로 손해배상액의 증액여부와 증액정도를 판단한다.

고의침해는 정황증거에 근거해 판단되기 때문에, 미국법원은 침해자의 고의성(willfulness)을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 특허권자는 고의침해를 우월한 증명기준(preponderance of the evidence standard)에 의해 증명하여야 한다. 지방법원 판사는 고의침해가 인정된 경우, 일실이익과 합리적인 실시료에 의하여 산정된 손해배상액을 3배의 범위 이내에서 재량으로 자유롭게 증액할 수 있다. 다만 손해배상액을 반드시 증액해야하는 것은 아니며, 일실이익과 합리적인 실시료에 의해 산정된 배상액을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1853년 Seymour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고의침해에 근거해 법원이 재량으로 증액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최초로 채택하였다. 우선 연방대법원은 1793년 특허법상 의무적인 3배 손해배상액 산정규정은 선의의 침해자와 고의적인 침해자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상당한 ‘법적 부정의(great injustice)’를 양산했다고 비판하며, 배심원에게 특허권자의 실제 손해액을 근거로 고의여부에 따라 3배범위 내의 손해배상액을 재량적으로 산정하도록 규정하도록 했다.

Seymour 판결 선고 이후, 미국법원은 침해자의 행위에 선의가 있는 경우 고의침해로 보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침해자의 선의를 판단하기 위한 정황증거로서 특허권 존재통지를 받은 이후 침해행위 해당여부를 확인하는 변호사의 의견서 획득이 중요하게 고려되기 시작했다.

특히 Seymour 판결 선고 이후부터 연방순회항소법원 설립 이전까지, 특허권자의 통지를 받은 침해자가 고의침해를 회피하기 위한 변호사의 의견서를 획득하는 것이 정황증거를 넘어 법적 의무(legal duty)가 된다는 법리로까지 형성되고 있었다. 이어 1982년 설립된 연방순회항소법원은 1983년 Underwater Devices 판결에서 적극적인 주의의무 원칙(affirmative duty rule)과 1985년 Shatterproof Glass 판결에서 불리한 추정의 원칙(adverse inference rule)을 채택했다.

적극적인 주의의무 원칙은 잠재적인 침해자가 특허권의 존재에 대한 실질적인 통지를 받은 이후 침해여부를 확인해야할 적극적인 주의의무를 갖고 특허침해행위를 시작하기 이전에 변호사의 의견서를 획득하여야 하는 의무가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리한 추정의 원칙은 침해자가 실질적인 통지를 받고도 변호사 의견서를 획득치 않으면 침해행위를 계속했다는 불리한 추정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원칙은 증액손해배상에 대한 법리를 특허권자에게 유리하게 설정한 법리로서, 당시 미국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던 특허중시정책(pro-patent policy)을 실천한 연방순회항소법원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곧 다양한 정황증거에 따라 판단돼야하는 고의침해 여부를 단순히 변호사 의견서 획득여부로 판단하도록 하는 문제와 함께, 의견서 비용 과다지출 등을 유도하면서 관련특허에 대한 검색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문제점도 야기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04년 Knorr-Bremse 판결과 2007년 Seagate 판결을 통해 두 원칙을 폐기하며 특허침해 행위에 대한 객관적·주관적인 요건을 증명해야 한다는 ‘two-part test’ 법리를 세웠다. 이후 2016년 Halo 판결을 통해 지방법원은 증액손해배상의 인정여부와 증액정도를 개별 사건에서 제출된 정황증거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증액손해배상제도에 의한 침해자의 처벌은 “고의침해(willful misconduct)”라는 “비난가능성이 있는 사건(egregious cases)”에서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고의침해의 인정기준을 완화했다는 점과 함께, 증액손해배상이 청구된 전체 사건에서 고의침해가 인정된 사건이 54%로 상승하는 등 더 높은 특허보호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Halo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도 지방법원은 이전처럼 연방순회항소법원이 1992년 Read 판결을 통해 채택한 9가지 정황증거인 Read Factors로 증액손해배상에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을 인정하기 위한 9가지 정황증거인 Read Factors를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우리 특허법 제128조 제9항이 규정하는 8가지 정황증거와 비교해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