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우정사업본부, 우정청, 우정공사

[강병준의 어퍼컷]우정사업본부, 우정청, 우정공사

우정사업본부 사태가 일단락됐다. 총파업 직전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노사 합의, 파업 중단, 본부장 사퇴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지면서 일단락됐다. 공공노조 사상 첫 파업이라는 오명은 둘째 치고 자칫 '우편대란'이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과연 끝일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잠재적인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잠시 사그라진 불씨일 뿐이다. 여전히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그만큼 우본 사태는 고질적이고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드러난 갈등은 집배원의 과중한 업무와 만성 적자의 충돌이다. 노조는 늘어나는 업무에 비해 집배원 충원은 이뤄지지 않아 '극한 직업'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우후죽순처럼 신도시가 들어선 경기도 일대는 우체국 시설이 부족해 가히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한다. 반대로 본부는 적자로 더 이상 증원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매년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다. 일부지역 업무 쏠림은 이해하나 집배원 배치가 자유롭지 않아 인력운영 효율성 면에서 떨어진다고 맞받아친다.

모두 근거 있는 주장이다. 우편업무는 적자다. 아니 적자일 수밖에 없다. e메일이나 메신저가 일반화돼 우편 물량은 주는 게 거역하기 힘든 추세다. 적자규모는 2017년 539억원에서 지난해 1450억원, 올해 2000억원까지 예상한다. 결국 돈 문제라는 걸 알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우편요금을 올리면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우편은 보편서비스 성격이어서 요금에 민감하다. 지역 기반인 집배원 상황을 고려하면 유연한 인력 운영도 쉽게 합의하기 힘들다. 본부와 노조가 평행선인 건 당연하다.

사태 본질은 다른데 있다. 한 꺼풀 더 들춰봐야 한다. 우편업무는 적자지만 우본 전체로 따지면 다르다. 예금·보험 등 금융 업무에서 쏠쏠한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금융에서 흑자 6000억원 흑자를 냈다. 단순 계산해도 우편 적자 1450억원을 보전하고도 남는 장사다. 전체로 보면 해법은 간단한데 이게 좀 복잡하다. 금융과 우편을 특별회계로 따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같은 울타리 사업이지만 금융에서 낸 이익을 우편에 이전해서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금융수익은 모두 국고로 귀속되고 우편은 적자규모가 커지는 상황이 쳇바퀴처럼 반복된다.

게다가 우본의 지위도 애매모호하다. 정부기관이면서 동시에 사기업 성격이 중첩돼 있다. 집배원은 공무원 신분이지만 임금은 세금이 아니라 자체 사업으로 벌어서 감당해야 한다. 공익사업을 민간에서 수행하는 셈이다. 이중적인 기형조직인데다 정보통신부에서 지식경제부 다시 미래창조과학부, 지금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소속기관이 바뀌면서 리더십마저 상실했다.

결국 우본 조직을 원점에서 고민하지 않고는 해법은 난망하다. 새판을 짜지 않고서는 아무리 묘수를 찾더라도 모두 미봉책이다. '우정청' 형태로 독립기구로 가던지, 민영화해 '우정공사'로 탈바꿈하던지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전임 강성주 본부장은 임기 4개월을 남기고 물러났다. 2000년 우본이 출범한 이 후 본부장 8명이 거쳐 갔지만 임기를 채우지 못한 첫 사례다. 어떻게 보면 불명예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보자. 그만큼 조직의 위기가 임계점까지 왔다는 신호다. 단지 개인의 실수나 책임일 리 없다. 더 큰 문제가 터지기 전에 하루빨리 수술대에 올려 공론화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그게 집배원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며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의 우체국이 되는 길이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