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장에서 바라본 한일 경제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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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현장에서 바라본 한일 경제전쟁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특히 제조업은 무려 75%나 줄었다. 반면에 국내 기업 해외직접투자(ODI)는 작년 동기 대비 약 45%나 증가해 1981년 이후 3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 등 대부분 경제관련 지표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산업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화가 나는 상황이다.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됐다. 높은 법인세와 최저임금의 2년 연속 급격한 인상 등으로 원가 경쟁력 약화를 가져왔고, 경쟁국에 비해 근로유연성이 떨어짐에도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한국의 자랑이었던 빠른 대응의 강점이 사라졌다. 글로벌 기업은 굳이 한국에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산업계 우방국이던 일본 정부가 한국에 판매 중인 핵심 소재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1100여개에 달하는 품목에 대해 관리 운운하면서 연일 우리 산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번 일본정부가 발표한 핵심 소재 세 개 품목은 대기업에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진출한 외투기업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는 공장을 가동하기보다는 위험 요소가 적은 대만에 있는 공장으로 물량을 이전하겠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본 대표 우익 월간지인 문예춘추는 지난 4월 특별호에 '일한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이라는 소제목으로 이른바 지한파 인사 5명이 참여한 대담형식 인터뷰 기사를 무려 21쪽에 걸쳐 게재했다. 결론은 일본의 경제 이익 측면에서 한국과 단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양국 간 수많은 대화가 진행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일본의 '한국 화이트국가 제외 검토' 발표를 보고 크게 놀랐다. 물론 이번 경제 제재 조치는 졸렬하기 짝이 없는 행위다.

그러나 우리나라 외교통상 관계자도 직무유기를 한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또 일본 정치인이나 일본 경제계 등과 돈독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은근히 과시하던 이른바 일본 전문가들은 무엇을 했는지도 궁금할 따름이다.

1990년대 초부터 약 10년간 국내 대기업 주재원으로 일본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국내 기업 핵심 기술력은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 기업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었다. 중요 부품이나 장비류는 이들 선진국 기업으로부터 구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현장을 누비던 수많은 관계자는 아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뼈저림을 가슴 속에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끌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미래를 향한 각고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메모리반도체, 휴대폰, TV, 조선 등 수많은 세계 1등 산업을 만들어 냈고 철강, 자동차, 소재화학 등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핵심 소재나 장비류 등은 오랜 산업 역사를 지닌 선진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국내 각종 미디어 기사를 보면 “빨리 국산화를 해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을 하자” 등 여러 가지 표현이 난무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계 산업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됐고, 최고 기술기업은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곳이다. 약육강식 논리가 철저하게 적용되는 밀림과 같다. 무역 중심의 나라 한국은 세계 곳곳에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 협력과 공존은 필수불가결하다.

단기로는 더 이상 산업 현장에 혼란이 발생하지 않게 정부와 정치권이 직접 나서서 해결책을 모색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 핵심 산업 육성계획 수립은 중장기 관점에서 검토하되 기획단계부터 꼭 관련 산업계와 연구기관 등 경험 많은 전문가 그리고 여야가 함께 참여해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 한국이 하이테크 국가로 진입하기를 바란다.

이승현 외국기업협회장 inpaqlee@inpaq.com.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