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7주년:기술독립선언Ⅱ] '공공 에너지 R&D' 2조 시대… 기술 변방에서 중심으로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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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영국·일본 등 주요 국가가 전기사업 체계 정비를 본격화했을 당시 우리나라는 에너지 기술 변방이었다. 한반도 전체 전력 설비 중 88.5%가 북한에 밀집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산업화, 고유가 시대를 겪으면서 현재는 미국과 선진 에너지 기술 패권을 겨룰 정도로 세계 수준에 올랐다. 2019년 공공부문 에너지 연구개발(R&D) 규모는 2조원을 돌파했으며 원전에 이어 신재생에너지 기술 초격차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 초격차 시동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우리나라 에너지 R&D 핵심은 '신재생에너지'다. 관련 분야에만 올해 R&D 자금 2154억원이 투입됐다. 원자력핵심기술 개발에 611억원이 들어간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특히 태양광·풍력·수소 R&D 기술은 선진국을 위협할 정도로 발전 속도가 매섭다.

우리나라는 '미래형 고효율 태양전지 원천기술 개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자리를 선점했다. 한국화학연구원 연구팀은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효율 25%를 경신하며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특별한 구조로 분자를 정렬해 태양전지에 적용시키는 방법으로 '저비용 고효율'이 강점이다. 중국이 장악한 세계 태양전지 시장에서 우리 기술력을 입증한 것으로 최고 효율 기록을 보유해온 미국을 제친 사례다. 머지않아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를 페로브스카이트로 대체하는 날이 올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크다.

풍력 분야에서는 '저풍속 고효율 풍력발전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입지를 다졌다. 풍력터빈은 바람이 잘 부는 지역에 설치할수록 전기를 많이 생산하지만 국내에서 바람이 1년 내내 잘 부는 곳은 제주도 해상과 강원도 산악지역 등 제한적이다. 에너지기술평가원·두산중공업 등은 풍력발전시스템 로터 직경을 134m까지 확장, 평균 풍속 6m/s에서 이용률이 30% 이상을 나타내는 등 기존 모델에 비해 이용률이 64% 향상된 결과를 도출했다. 블레이드가 클수록 풍력터빈에 가해지는 하중이 증가한다는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탄소섬유 프리프레그 소재를 적용하고 비틀림-굽힘 연성(TBC) 기술을 블레이드에 접목, 하중저감 효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수소 분야에서는 '수소연료전지차용 고분자 연료전지 시스템' 개발로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연료전지는 연료와 산화제를 전기 화학적으로 반응을 일으켜 전기 생산하는 장치다. 우리나라는 연료전지를 차량에 탑재하기 위해 기존 연료전지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 발전 출력을 가변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도 동시에 확보했다. 기존 발전용 연료전지는 출력이 일정하지만 차량용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것에 따라 출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기존 문제를 R&D로 풀어낸 것이다.

에너지기술평가원 관계자는 “해당 기술을 수소차에 적용, 실제 상용화하는 성과를 냈다”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 전지는 기존 한계인 짧은 수명을 늘리는 기술에 초점을 맞춰 R&D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전해체기술'도 관심 UP

신재생에너지 기술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적극 육성하는 에너지 기술 분야로 '원전해체기술'이 손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원전해체 분야에 271억5000만원 R&D 자금을 투입, 2016년부터 3년간 연평균 22% 늘렸다. 4차 산업혁명을 세상에 알린 '바둑新 알파고' 같은 원전해체 신기술이 우리나라에서 먼저 개발될 거란 기대다.

우리나라 원전해체 기술은 선진국 최고 기술 대비 약 80% 수준이지만 정부 주도 하에 기술 개발이 지속 추진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상용화 기술을 중점으로 R&D를 추진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정통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각각 기반기술, 안전성 검증 기술개발에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뒤처진 기술로 평가받은 원전해체 분야는 '환경복원'으로 R&D가 시급하다. 정부는 2017년 6월 영구정지 된 '고리 1호기' 원전해체 경험을 기반으로 핵심 기술력을 확보한 후 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힌다는 복안이다. 국내에는 약 63개 원전해체 관련 기업이 있으며 △제염(12개) △절단·철거(18개) △폐기물 처리(14개) 등 분야에 집중 분포돼 있다.

에너지 전문가는 “탈원전 선언으로 위축된 원전 산업계에 활력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원전해체 분야 밖에 없다”면서 “원전해체는 우리나라가 후발주자지만 세계에서도 독보적 기술을 갖춘 나라가 전무하기 때문에 R&D를 통한 선행 기술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