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패가 아픔이 안 되려면

정용철 SW융합산업부 기자
정용철 SW융합산업부 기자

머리는 기본적으로 뛰어났다. 나이는 어리지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커서 큰일을 할 인재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집에서는 없는 살림에 빚을 내서 과외도 시키고, 위축되지 말라고 좋은 옷에 좋은 가방도 사 줬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서서히 한계가 왔다. 자신보다 똑똑한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집에서 낸 빚도 있고, 무엇보다 주변의 기대가 무서웠다. 오를 기미가 없는 성적표를 집에 보여 줄 자신이 없어 버리기도 했고, 조작할까 고민도 했다.

성공 제일주의에 매몰된 학생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과 묘하게 닮아 있다. 처음에는 희소·난치 질환을 정복할 꿈의 신약 후보물질처럼 보였다. 연구개발(R&D)을 본격화하기 위해 투자 자금을 모았다. 적지 않은 돈이 모였고, 꿈은 곧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의 성공 가능성이 존재하는 신약 개발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투자자들의 원성, 쏟아부은 노력 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돈이 문제일까. 전문가를 더 모으고, 임상시험 규모를 늘리면 가능할지 모른다. 또 다른 비전을 포장해 투자 자금을 더 모았다. 결과는 또 비슷했다.

올해 들어 촉망받던 바이오 기업의 시련이 가혹하다. 대부분 코스피 시장에서 시가 총액 톱5 안에 들던 기업들이다. 임상 3상의 결과가 좋지 않거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한순간에 추락했다. 심지어 문제가 있었지만 이를 숨겼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저마다 이유는 있지만 쉽게 믿음이 안 든다.

국내에서 주목 받고 있는 바이오 기업은 멈출 수 없는 마차를 탄 것 같다.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면 뒤집어 질 듯하다. 10년 남짓의 우리나라 신약 개발 역사 속에서 어느 순간 성공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실패는 성공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이다. 다만 실패가 두려워서 이를 감추거나 조작하는 행위는 문제다.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에서 실패는 시행착오로 보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 대신 비도덕,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묻는 합리적 인식이 요구된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