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직접금융 '양날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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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금 필요하시죠? 이자는 시중금리보다 낮고 원금은 상장에 성공하면 주식으로 돌려주면 됩니다.”

최근 만난 중소기업 대표가 투자 유치 과정에서 들은 말이다. 이보다 앞서 정책금융 기관으로부터 보증연계 투자를 받으려던 당시에도 마찬가지 말을 들은 그는 큰 고민 없이 투자를 결정했다. 당장 투자 계약을 완전히 이해하느냐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나 일부 투자 금액에 대한 상환 요청이 들어왔고, 그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다시 은행에 손을 벌려야만 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장을 통한 구주 매각 차익도, 배당 이익도 얻기 어려우니 빌려준 돈 일부를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자금을 모아 준 출자자에게 약속된 돈을 돌려줘야 하니 기업 사정을 봐주기도 어렵다.

돈을 빌린 투자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자가 원하는 대로 따르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 회사 대표가 당초 정책금융 기관의 투자 제안을 유보한 것도 혹시 모르는 부작용을 우려해서였다.

흔히 자본 시장에서는 이런 투자 기법을 메자닌이라고 칭한다. 메자닌은 이탈리아어에서 온 말로,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1층과 2층을 오가듯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모두 갖춘 증권이다. 최근 자본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투자 방식은 최근 코스닥 시장을 넘어 비상장 기업에까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역시 상당한 비중을 비상장기업 CB와 BW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운영자금을 필요로 하는 비우량 기업은 조달한 돈이 은행이냐 증권사냐 벤처캐피털(VC)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나 지분 투자를 받을 때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부가 직접 금융의 장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한계기업이 은행에서 운영자금을 조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에 있다.

시장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다. 벤처투자 규모는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단순히 자금 공급만을 확대하기보다는 투자자와 기업 간 공정한 투자 환경 조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