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원자력 안전기술이 지키는 세상

박진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소장
박진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소장

40여년 전인 1978년, 우리나라는 고리 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원자력에너지 시대를 열었다. 미국, 유럽, 러시아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960년대부터 효율성과 경제성이 뛰어난 원자력발전을 주목해 대규모로 건설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Three Mile Island) 발전소와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세계적으로 원전건설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원전 건설이나 운전이 축소됐고, 원전 설계 및 규제 분야의 안전 관련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장점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개발에 진척이 없자 다시 원전 이용과 신규 건설에 대한 세계적인 붐이 발생한다.

2000년대 이후 이산화탄소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로 주목받으며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2011년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하면서 중국 등 개발도상국 몇몇을 제외한 국가에서 탈원전이 가속화됐다. 우리나라도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을 중지하는 한편, 신고리 5, 6호기를 제외한 원전 신규 건설을 중단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가동원전은 현재 25기에서 점차 감소해, 2082년에는 원자력발전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국내 원자력 안전연구 패러다임도 변했다. 국가 핵심 기반 에너지원인 차세대 신형원전 개발 연구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 운영과 국민 요구에 부합하도록 안전기술을 강화하는 연구 중심으로 변화했다. 이런 변화는 국제적으로도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 OECD 원자력기구(NEA) 맥우드 사무총장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가동원전과 차세대 중·소·초소형 원자로의 안전기술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2020년 5월에 OECD/NEA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공동으로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원자력 안전 혁신기술 국제 워크숍'을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 2017년 7월 한국갤럽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발표됐다. '원자력 발전의 이용에 찬성하는가' 질문에 59%의 국민이 그렇다고 답했다.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다고 보냐는 질문에는 54%가 위험하다고 답변했다. 즉 국민은 국가 기반 에너지 생산을 위한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안전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개발되는 그날까지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은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에 정부는 '국민이 안심하는 안전한 원자력'을 목표로 원자력안전연구 전략을 수립했다.

가동원전의 안전 극대화, 세계적 수준인 국내 안전성 평가 및 검증기술 활용 강화, 4차 산업혁명 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원자력 안전성의 혁신화 촉진이 그것이다. 원자력연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원자력안전 강화'를 목표로 가동원전 사고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혁신적인 안전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전 비정상 상태를 감시, 진단해 고장이나 사고 위협 인자를 예측하는 기술, 원자로 계통 핵심부품의 사고저항성 강화 및 인적오류 최소화를 위한 사고예방 기술, 만일의 사고 발생 시에 신속대응 및 환경피해 최소화를 위한 사고 대응 및 복구 기술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원자력 안전연구에서 도출되는 혁신적인 성과는 원전뿐 아니라 화학플랜트, 초고층빌딩 및 교량, 우주, 국방 분야 등 국가기반 인프라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기술로 파급돼, 국민 생활환경을 안전하게 지키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진호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안전연구소장 pjh213@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