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젠 롯데와 신세계가 궁금하지 않다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유통업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받는 질문이다. “쿠팡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된대요?” “무신사에서 재미있는 한정판 상품을 내놨던데 잘 팔렸나요?”

이들 대부분은 마켓컬리나 배달의민족의 신규 서비스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롯데와 신세계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어차피 뻔하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해졌다.

과거 유통업계에선 롯데와 신세계가 시장을 이끄는 트렌드 세터 역할을 맡았다. 지금은 아니다. 백화점과 마트가 전통 소비 채널로 밀려나고 온라인 커머스, 스타트업이 시장 트렌드를 이끈다. 유통 헤게모니 이동도 이미 상당히 이뤄졌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예전엔 기자들도 우리에게 시장 트렌드를 묻곤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면서 “솔직히 이제는 우리가 트렌드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고 고백했다 .

시장의 궁금증을 잃은 결과는 냉혹했다. 영업이익은 급전직하했고, 점포는 줄줄이 문을 닫았다. 미니카로 둔갑한 대기업 배송차량이 마켓컬리 트럭 뒤를 줄줄이 따라가는 다소 굴욕 어린 광고에도 그저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통 대기업 오너까지도 현실을 자각하며 기존 관습을 타파할 것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 50년 동안 업계 리더 자리를 지켜 왔지만 앞으로의 50년도 시장을 선도할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기존 사업 방식과 경영 습관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강도 높은 질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마트의 쓱데이, 초탄일 연타석 홈런은 반갑다. 차갑게 식은 줄로만 알고 있던 소비자들의 관심이 다시 대형마트로 쏠렸다. 업계도 이마트가 이번 초저가 행사에서 무엇을 준비하는지 무척 궁금해 했다. 이마트가 오랜만에 업계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골든타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객이 찾고 시장이 궁금해 하는 유통 대기업만의 콘텐츠가 더 필요하다. 결국 소비자를 사로잡는 것은 '한 끗' 다른 서비스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