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학습된 무기력

[기자수첩]학습된 무기력

서커스단에서 자란 코끼리는 부실한 줄에 묶여 있어도 탈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줄을 끊을 힘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실패 경험 때문이다.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한다. 심리학 용어로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한국은 모빌리티 서비스의 패러다임 전환에 계속 실패했다. 이번 '타다' 사태 결과 예상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것도 과거 학습 덕분이다.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택시업계는 '종사자 25만명, 부양가족 100만명' 표심을 강조했고, 정치권은 대부분 택시 측 손을 들어 줬다.

국민은 20대 국회에서 새로운 무기력을 배웠다. 임시국회는 '타다금지법' 법안 처리 과정에서 오점을 남겼다. 법제사법위원회는 만장일치 관행을 무시하고 '찍어 누르기'식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법안이 누구의 이익을 반영하느냐는 두 번째 문제다. 타다가 편법이냐 아니냐도 부수 논쟁거리다. 일반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누군가는 혁신에 도전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사기꾼·범죄 집단으로 매도되면서 누가 도전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의 목소리도 같다. 타다는 서비스 출시 전 로펌에 관련법을 자문하고 정부와 운영 방식에 대해 지속 소통했다. 여기에 더해 사법부의 무죄 판결까지 끌어냈다. '그런 타다도 못했는데'라는 심리가 족쇄로 작용, 예비 창업자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우버의 국내 진출 당시에도 상황을 더 면밀하게 따져 연착륙을 시도했어야 했다. 결국 말로만 카풀 대타협, 실제로는 '카풀금지법' 통과로 이어져 카풀 산업은 고사했다. 정치권도 학습을 한다. 택시편을 들어 주면 얻는 표는 있어도 잃는 것은 없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배웠다.

자율주행까지 갈 것도 없다. 다음 희생자는 개인이동수단(PM)이 될까 우려된다. 24시간 운영되는 공유 전동킥보드·전기자전거는 심야 시간대 택시 수요를 일부 대체한다. 신산업이지만 타다와 비교해도 더 불안정한 법적 지위에 있다. 업계는 법제화를 지속 요구해 왔지만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정치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택시와의 갈등이 발생하면 정부와 국회가 조율할 수 있을까. 오는 4월 총선 이후에도 무기력이 이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