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원광연 NST 이사장 “남은 숙제 해결에 마지막 힘 짜낸다”

“저에게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으로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네요. 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임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이사장이 되고자 합니다.”

지난 2017년 10월 임명된 원광연 NST 이사장은 앞으로 7개월여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원 이사장 임명은 당시 세간의 의아함을 자아냈다.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연구원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인생 대부분을 대학 교수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신 배경을 떠나 출연연 구성원과 같은 과학기술인으로서 공유하는 바가 많았고 국가 발전이라는 지향점이 같았다. 지금은 2년여 임기 동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잘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원 이사장은 스스로를 “겨우 과락을 면한 수준”이라며 박하게 평가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열린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을 보면서 이를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다. 남은 것은 '노벨상' 뿐이라는 설명이다. 출연연을 이끄는 NST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남은 숙제가 많다. 진행 중인, 미쳐 마무리 짓지 못한 일도 산재해 있다. 과학기술을 필요로 하는 국가 이슈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NST에서 원 이사장을 만나 그동안 성과와 노력한 바를 돌아보고 앞으로 계획을 들어봤다.

원광연 NST 이사장(오른쪽)과 정동수 전자신문 전국총괄 부국장(왼쪽).
원광연 NST 이사장(오른쪽)과 정동수 전자신문 전국총괄 부국장(왼쪽).

대담=정동수 전국총괄 부국장

-지난 2017년 하반기 임명 후 2년여 시간이 지나는 동안 특히 기억에 남는 추진 성과는 무엇인지.

▲대학에 있을 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과제를 두고 경쟁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출연연 상황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작은 과제도 ETRI가 대학과 경쟁해야 하고 과제 책임자는 인건비를 만들기 위해 연구보다 과제 수주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을 보면서 R&D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NST는 지난해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ST와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R&R)'을 재정립했다. 또 이를 위한 재정전략으로 '수입구조 포트폴리오'를 수립했다. R&R가 단순한 서류 작업에 그치지 않고 기관운영 계획으로서 지속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조직, 인력, 예산, 사업 등에 대한 개편을 통해 역할 수행에 기관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재료연구소를 비롯한 부설연구소 운영체제 혁신을 추진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운영 안정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고 여성과학기술인 양성 지원이나 장애인 의무고용 등 사회적 약자 기회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출연연 국가균형발전 및 지역혁신 기여를 위해 연구회가 전국 7개 권역별로 출연연 지역조직협의회를 구성, 운영하고 있다.

-출연연은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 사태,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국가적인 이슈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황은 어떻고, 향후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최근 다양한 국가적 이슈에 총괄적인 출연연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NST는 25개 출연연의 리더이자 조력자로서 헤드쿼터 역할 수행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수출규제 이슈가 나왔을 때에도 NST가 선제적으로 '일본 무역제재관련 출연연 대응전략'을 발표했고 정부와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 방향기획, 관련 중소기업 지원 협의에도 나섰다. 앞으로도 출연연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19 사태에도 초기부터 20개 출연연 기관장이 모여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현재 신종바이러스(CEVI) 융합연구단을 비롯한 출연연 연구진이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국가적 이슈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긴급현안에 대해서는 신속한 의견수렴과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연구회 내 본부장들과 신속한 회의, 출연연 기관장과의 긴밀한 소통을 이루는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 올해 출연연 통합 포털시스템을 구축 중인데 이것이 완료되면 기관장 간 소통채널뿐만 아니라 NST와 출연연, 출연연 연구자 간 실시간 소통 및 협력 채널로 작동한다. 기존보다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국가적 이슈에 대응하고 NST가 헤드쿼터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원광연 NST 이사장
원광연 NST 이사장

-이런 국가적 이슈 관련 연구내용을 출연연 R&R에도 반영하는지.

▲출연연이 '일본 수출규제' '감염병 이슈' 등 변화하는 과학기술 환경변화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R&R 운영에 유연성을 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정립한 R&R는 상향식 방식의 R&R다. 다음 단계로는 미세먼지, 소부장, 감염병 문제 등과 같이 개별 기관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들에 대해서는 각 출연연이 힘을 모아 대응할 수 있도록 수평적 R&R를 정립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기관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 혹은 확보해야 하는 기술 관련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각 기관별 역할을 정립해 출연연 이름으로 기여하고자 한다. 현재 18개 출연연 연구협의체와 연계해 수평적 R&R를 정립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연구분야별 목표달성을 위한 프로그램 단위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세부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할 일이 많은데, 특히 출연연 감사 일원화 추진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출연연 연구자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 전념하려면 연구몰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감사가 누구냐에 따라 감사 기준이 달라지고 결국 업무처리 기준에 혼란과 불확실성이 생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연구에 소극적이게 되는 풍토를 낳게 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일관되고 전문적인 감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기존에 적발 위주로 이뤄지는 연구비 집행 사후 감사를 지양하고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절차상 미흡한 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예방 중심 감사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관별 감사 기능을 연구회로 이관해 감사 기준과 방법을 일원화하고 기관 자체감사 활동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기 내 이것을 꼭 이루고자 한다. 물론 자체감사 중 일상감사와 복무감사는 출연연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출연연에서도 윤리경영 미흡 요소나 중대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한다. 출연연에 특화된 감사 교육과 방법론을 개발해 외부기관의 감사 횟수도 줄일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할 계획이다.

원광연 NST 이사장
원광연 NST 이사장

-과학외교 활동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장 연구자들이 열심히 연구에 나서줘야 하지만, 이것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연구자가 신나게 연구할 수 있도록 저 같은 사람이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큰 역할이 과학외교에 있다. 과거에 일본의 과학행사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총리가 기조강연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일본의 미래가 과학기술에 있고, 과학기술자를 존중한다'고 얘기한다. 추상적이고 상투적이지만 세계 과학자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과기 기반 국가발전을 얘기한다. 이날 행사에는 세계 기관 리더도 모였다. 이런 의미 깊고, 큰 과학외교의 장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광연 NST 이사장
원광연 NST 이사장

-해묵은 논란거리로 '출연연 거버넌스'가 있다. 기관들의 규모와 조직을 정비해 효율성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사회·기술 환경 변화에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출연연이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현재 연구회 체제도 완성형이 아닌 발전 중이라 생각한다. 연구회 이사장 취임 이후 출연연 기능 조정 및 정비를 통해 출연연 거버넌스를 비롯한 조직 효율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지만 잦은 거버넌스 개편 논란은 구성원의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고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단계적·전략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수준으로 출연연의 규모를 확대하고 출연연 간 경계를 넘어 유연한 인력교류와 연구수요 대응이 가능한 거버넌스 마련이 필요하다.

◆원광연 NST 이사장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응용물리학과를 나왔고, 5년 동안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었다. 이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전산과학 석사학위, 메릴랜드대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펜실베니아대에서 조교수로 활동하다 1991년에 귀국, KAIST 교수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2005년에는 한국 HCI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2006년에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 초대 원장에 임했다. 문화기술(CT)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것도 원 이사장이다.

정리=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