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11> 블랙박스 밖으로

블랙박스(Black Box).

분명 비슷한 것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혁신에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한다. 이걸 따져보려니 학자들은 지식생산함수라는 것을 동원했다. 혁신은 투입과 과정의 산물이다. 여기에 답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투입은 빤히 보였지만 결과는 매번 달랐다. 문제는 재료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학자들은 들여다볼 수 없는 이곳을 블랙박스로 불렀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11> 블랙박스 밖으로

왜 누군가는 반복해서 창출하는 것일까. 어떻게 매번 혁신 아이디어를 찾아낼까. 이들의 블랙박스에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모두 이 질문에 매달렸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자 아트 마크먼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작 다른 것은 블랙박스가 아니라 입력값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슨 진공청소기를 보자.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 먼지 거름망이 차면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고출력 모터는 해결책이 못 됐다. 먼지 거름망의 미세한 구멍이 막히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이른바 '봉지 문제'로 정의됐다. 어떻게 하면 흡입력을 안 떨어뜨리고 교체하기 쉬운 먼지 거름망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제임스 다이슨만은 생각이 달랐다. 이건 집진봉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흡입력이고, 이것을 떨어뜨리는 것은 공기에 섞인 먼지였다. 먼지가 공기에 섞여 있는 한 어떠한 방법이든 성능은 떨어진다.

문제는 집진봉지가 아니라 어떻게 공기와 먼지를 분리하느냐에 있다고 봤다. 집진봉지 재질이며 숨구멍 크기도 무관해졌다. 모아야 할 것은 먼지가 아니라 먼지를 뺀 순수한 공기였다.

다이슨은 자신이 잘 아는 기술 가운데에서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상 자신이 잘나가는 엔지니어 아니런가. 잠깐만에 산업용 사이클론(원심력 집진기)이 떠올랐다. 사이클론 안에 공기를 회전시키면 원심력으로 부스러기는 벽으로 밀려 침전하고 공기는 나선운동을 마치면 배출되는 구조였다.

이것을 손에 들 수 있는 크기와 무게로 미려한 디자인에 넣어 보기로 한다. 실상 다이슨 자신은 산업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런 탓에 항상 제품 디자인에 민감했다.

실상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나 공기청정기를 보며 디자인의 미려함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가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부를 때는 디자이너인 자신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물론 5217개 시제품 끝에 다이슨은 세상에 나왔고, 이것은 바람과 공기가 매개되는 가전제품을 모두의 상상력 너머로 바꿔 놓았다. 다이슨은 그 선배 격인 후버나 제록스·코닥처럼 그 자체로 대명사가 됐다.

많은 학자는 지식생산함수를 보며 함정에 빠졌다. 무엇이 들어가고 어떤 것이 나오는지를 봤다. 분명 비슷한 것으로 시작하지만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분명 블랙박스 안에 해답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긴 들여다보기 어렵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이 안을 들여다보려고 매달렸다.

마크먼 교수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정작 질문 자체가 달랐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블랙박스 안에 답이 있다고 믿었을 때 이미 함정에 빠져 있었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 비밀에 조금 더 다가섰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남들과 다른 질문을 찾아내야 할까.” 정작 블랙박스 바깥에 창의성이 숨어 있은 셈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11> 블랙박스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