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정책포럼]<95>'지식재산혁신청'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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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삼성의 지식재산 소송은 디자인 및 특허 전쟁이었다.

글로벌 브랜드의 자존심을 건 전쟁은 디자인을 앞세운 애플의 승리로 끝났다.

제품은 상표, 디자인, 특허(실용신안)로 이뤄져 있다. 이를 합쳐 지식재산이라 한다. 우리 기업의 제품 개발은 기술을 먼저 연구한 뒤 그다음 디자인을 개발하고, 제품 출시가 임박해 브랜드를 출원한다. 각자 따로따로 방식이다.

애플의 제품 개발 방식은 다르다. 애플은 아이폰을 만들 때 '브랜드 먼저, 디자인 그다음, 기술은 나중에'라는 신제품 개발전략(ANPP)을 사용했다. 아이맥(iMac)·아이팟(iPod)·아이폰(iPhone)·아이패드(iPad)는 각각 인터넷(internet), 개인(individual), 정보(inform), 영감(inspire)과 같은 'i'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확보했다.

스티브 잡스와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사용자경험(UX)에 기반을 두고 디자인을 먼저 완성해서 그 안에 기술을 채워 넣었다. 아이폰은 브랜드, 디자인, 특허의 집합체다. 토털 아이덴티티는(TI)는 회사 로고(CI), 제품 아이덴티티(PI), BI의 합이다.

소송의 쟁점이 된 트레이드 드레스(코카콜라 병 모양 같이 제품 특유의 색깔·크기·모양), 룩앤드필(GUI와 같이 사용자의 제품 체험과 겉모양, 인터페이스의 주된 기능) 등은 애플 제품 개발 전략의 산물이다.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애플이 정정당당하게 특허로 싸우지 않고 디자인으로 공격했다고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애플스럽다'는 말은 애플의 제품이 미니멀리즘, 일체감, 감성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애플 제품을 봤을 때 '애플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미국 지식재산청은 USPTO다. 미국은 디자인도 특허라고 하기 때문에 이를 풀면 미국 특허·디자인·브랜드청인 것이다. 당연히 소송에서 디자인도 특허만큼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2016년 유럽연합(EU)은 유럽특허청(EPO)을 분리해 유럽상표·디자인청(EUIPO)을 신설했다. 프랑스(산업재산청), 중국(국가지식재산권국)도 지식재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오늘날 특허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뿐이다. 국민에게 특허청이라는 용어는 기술만을 중시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기술 후발 주자인 우리에게는 불리한 전략이다. 이 때문에 우리 기업은 디자인과 브랜드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외국에 진출한다. 그러나 외국 회사의 우리 제품 브랜드 베끼기인 '미투'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보면 '특허'라는 말은 '왕이 특별히 허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특허청은 그 용어만큼 무소불위의 기관이 아니다. 국민에게 지식재산을 서비스하는 기관이다. 지식재산은 과거 유산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열어 가는 힘의 원천이다. 오늘날 지식재산권의 범위는 특허·디자인·상표를 넘어 반도체회로 배치설계, 컴퓨터 프로그램, 소프트웨어(SW), 생명공학 등 신지식재산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한 LG전자도 처음에는 특허담당 임원을 최고특허책임자(CPO)라고 불렀다. 그러나 특허뿐만 아니라 디자인, 브랜드로 함께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최고지식재산책임자(CIPO)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필자가 초대회장을 지낸 한국지식재산협회(KINPA)도 2008년부터 CIPO 조찬세미나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한국 특허청은 영문으로는 KIPO로, 직역하면 '대한민국 지식재산청'이다. 이제는 그 이름을 똑바로 불러 줄 때가 됐다. 우리가 특허청을 '지식재산혁신청'이라 부를 때 혁신 성장에 기여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정환 리인터내셔널 고문(전 LG전자 부사장) jay.lee@leeinternatio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