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유업계와 장관의 의지

류태웅 산업에너지부 기자.
류태웅 산업에너지부 기자.

“장관이 업계 얘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요구 사안이 여러 관계 부처와 얽혀 있어 당장 해결하기 어려워도 '노력해 보겠다'는 식으로 말해 안도됐다.” 최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정유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 참석한 정유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당시 성 장관은 공개 발언에서 “민·관이 합심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정유업이 세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폭락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익 악화에 직면한 정유업계를 정부가 추가로 정책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정유업계는 성 장관의 언행에 고무됐다. 주무 부처 장관이 정유사 CEO를 따로 만난 것도 이례이지만 발언의 무게감이 여느 때보다 남달랐기 때문이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사실 정유업계는 '기름 장사'라는 꼬리표 탓에 정책에서 소외된 측면이 있었다”면서 “이번에는 정부가 신경 쓰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산업부의 정유업계 지원 정책은 시의적절했다. 석유수입·판매부과금과 관세를 각각 90일, 2개월 납부유예 해준 게 대표 사례이다. 애초 이는 기획재정부 등과의 협의 사안이어서 결론 도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주무 부서인 석유산업과는 2~3월부터 정유업계 동향을 예의주시했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발 빠른 조치에 정유사들은 9000억원에 이르는 유동성 완화 효과를 봤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유사는 올해 1분기 3조원에 이르는 영업손실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유 업황과 정유사 실적이 급반전하려면 적어도 2분기는 돼야 할 것으로 입을 모은다. 그때까지 유동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대표격인 세금 납부 유예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석유수입부과금과 석유 관세는 정유사 재무에서 가장 많은 지출 비중을 차지한다”면서 “이를 감면해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금은 비상 경제 상황이다. 비상 상황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산업부가 해 온 것처럼 실질 추가 지원 대책을 내놓는다면 성 장관 말대로 위기 극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