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트]유한영 SDF융합연구단장, “국가적 이슈에 전공은 무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봐야 할 것은 손가락이 아닌 달입니다. 손가락이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표로 향할 수 있다면 바이오기술(BT)이든 정보통신기술(ICT)이든 상관 없이 협력해야 합니다.”

유한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구제역 대응(SDF) 융합연구단장은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되는 연구개발(R&D) 성과를 낸 연구자다.

유한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구제역 대응(SDF) 융합연구단장
유한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구제역 대응(SDF) 융합연구단장

유 단장과 SDF 융합연구단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ICT를 활용해 성과를 냈다. 암퇘지 분비물로 야생멧돼지를 유인하고, 첨단 기술로 포획하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야생멧돼지가 ASF 확산 주역으로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사태에 가려졌지만, ASF는 돼지에게 치사율이 100%에 달할 정도여서 축산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는 국가적 이슈다.

유 단장은 “지난달 22일 기준 야생멧돼지 유래 ASF 발생 건수는 550건으로 휴전선 근처에서 발생해 전국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자칫 국가적 재난이 될 수 있어,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연구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암퇘지 분비물로 야생멧돼지를 유인한다는 아이디어도 직접 냈지만, 수의학 전문가가 아닌 탓에 확신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바이오 분야가 아닌 ETRI가 이 일에 뛰어든 것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확산을 막는 R&D 성과 주역들. 사진왼쪽부터 이봉국 이상징후스크리닝연구실장, 윤환식 연구지원실장, 유한영 단장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확산을 막는 R&D 성과 주역들. 사진왼쪽부터 이봉국 이상징후스크리닝연구실장, 윤환식 연구지원실장, 유한영 단장

유 단장은 “구제역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나는 물리학과 출신으로 돼지를 잘 모른다”며 “아이디어가 정말 먹힐지 확신이 없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용감히 나선 결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두 달에 걸쳐 네 차례 실증을 거쳤는데, 2차 실증에서부터 야생멧돼지를 유인할 수 있었다.

유 단장은 “4차 실증은 이미 포수들이 개체수 조절을 한 곳에서 진행했는데도 3000장 가까운 움직임 감지 사진이 찍혔다”며 “생각한 바가 실현될 때 연구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 몸을 감쌌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다시 구제역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유 단장과 SDF 연구단은 현재 구제역 대응 시스템에 '데이터 기반' 대응 체계를 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구제역 발생 후 조기 징후 발견, 진단, 대응 등 모든 과정의 의사결정을 돕는 '바이오시큐리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유한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구제역 대응(SDF) 융합연구단장
유한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구제역 대응(SDF) 융합연구단장

그는 “이번 야생멧돼지 성과는 우리와 같이 ICT 분야를 다루는 사람이 다른 분야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구제역 분야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존 의사결정을 도와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