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 박사의 4차 산업혁명 따라잡기]<47> 4차 산업혁명 시나리오-다국적기업과 국가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질 두 주체가 있다. 국가와 다국적기업이다. 새삼스럽게 국가와 다국적기업을 언급하는 것은 이들의 성격이 달라지고, 두 주체 간 역학 관계가 새롭게 구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24만개가 넘는 다국적기업이 세계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OECD 국가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43개 산업에서 외국기업과 국내기업 경제 활동을 분석해 발표한 자료(AMNE 데이터베이스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총생산(GDP)의 3분의 1, 세계 무역의 50% 이상, 전체 고용의 4분의 1을 다국적기업이 차지하고 있었다.

세계 상위 1% 이상에 해당하는 2000개 기업이 18개 국가에 분포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미국·중국·일본에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2017년 현재 67개 다국적기업이 있다. 애플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세계 3분의 2에 해당하는 국가의 GDP를 초과하고 상위 25개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은 많은 국가를 압도할 정도로 세계 경제에서 미치는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상위 2000개 다국적기업의 2017년 매출은 39조달러로 2003년 매출 25조달러보다 50% 이상 증가했으며, 시가 총액 역시 31조달러에서 57조달러로 늘어났다. 세계 경제에서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다국적기업은 경쟁력의 원천을 본국에 두고 시장 확대, 인건비 절감, 운송비용 축소, 자원 접근 용이 등 이유로 제3국에 진출한다. 대체로 대기업은 자신의 영역에서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일에 집중하는 반면에 다국적기업은 주재국의 제도와 사회·문화적 환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업 활동 외 로비 등 정치적 활동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사업 환경을 조성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국적기업은 투자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와 타협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한다. 다국적기업 규모가 점점 커지고 그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치적 활동이 강화되고 본국 영향력을 자신의 사업 활동에 활용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대하려는 본국의 이익과 맞아떨어져 큰 흐름이 돼 가고 있다. 최근 선진국들이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다국적기업과 국가 간 관계가 더욱 밀착되고 있다.

한편 다국적기업 역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에 노출됐기 때문에 이전의 활동과는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탈선진국화와 함께 기능을 여러 국가로 분산시킨 준국가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 결과로 새로운 지식이나 다양한 플랫폼이 세계 곳곳으로 분산됨에 따라 특정 국가에 기반을 둘 이유가 약해졌고, 각국의 자금 이동 억제나 산업 보호 강화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향이다. 이는 다국적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패턴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국적기업이 선도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세계 질서 개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본국이나 주재국을 자극할 수도 있으며, 이탈하려는 다국적기업에 더욱 큰 혜택을 부여하는 타협책을 쓸 경우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향후 다국적기업은 그들 간 협력으로 정보와 공급망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확대함에 따라 많은 국가가 이들에 대한 통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다국적기업과 밀착한 소수 강대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구도가 자리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음 주에는 초연결 국가가 가져오게 될지도 모를 위험성을 세 번째 시나리오로 엮어 볼 예정이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jkpark@nanotech2020.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