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가당착

[기자수첩]자가당착

혼란스럽다. 상반신은 반일·극일인데 하반신은 친일이다. 일본이 싫어서 자전거 구동계를 살 때도 싸고 좋은 일본 시마노 대신 비싼 이탈리아 캄파놀로를 산다.

닛산이 30% 할인하는데도 더 비싼 국산차를 선택한다. FC서울이 미쓰비시중공업을 모기업으로 둔 우라와 레즈를 만나면 수원삼성을 만날 때보다 전투력이 더 치솟는다.

그런데 게임은 일본 게임을 즐긴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로 '파이널판타지7리메이크'를 하고 닌텐도 스위치에서 '드래곤퀘스트11S'를 한다. 날 기자로 이끈 것도 고전 일본 게임이다.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해 준 은품(恩品)인 셈이다. 아이러니하다.

그냥 일본이 싫다. 문중에 독립운동가가 있어 역사적 사명감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나마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제의 만행을 보고 분노한 뒤 싫어졌다는 게 가장 잘 포장한 이유다. 이후는 이성 영역이 아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소비한다. 나도 왜 이런지 혼란스럽다.

요즘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현안 전체에 걸쳐 몇 배 더 혼란스럽다. 게이머와 기자 사이에서 자가당착에 빠진다.

취재하는 이현수는 불법게임물 유통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내 기업의 역차별을 보고 듣고선 심각하다고 판단한다. 유독 스팀만 법의 칼을 피해 가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다. 이런 기조로 자문하기도 한다.

게임을 하는 이현수는 스팀 라이브러리에 500개가 넘는 게임이 있으면서도 할 게임이 없다고 투덜댄다. 미심의 게임의 국내 유통이 막히면 할 게임이 더 없어지겠다고 푸념한다. 사행성 게임과 일반 게임을 완전히 다른 법으로 구분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처럼 게임물관리위원회와 밸브가 협조를 지속하며 흐지부지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한다.

명백히 불법인 미심의 게임에 대해서는 오락가락하면서 정작 제재할 명확한 규제나 법이 없는데도 중국 게임의 과장·선정 광고는 플랫폼에 책임을 물어서라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믿고 취재한다.

결국 우매한 나를 자가당착에서 구제해 줄 수 있는 건 조속히 게임법이 개정되는 것밖에 없다. 사전등급분류, 확률형아이템, 중국발 과장·선정광고, 셧다운제, 공정위 고시를 둘러싼 혼란 속에서 날 해방시켜 줄 수 있다.

자율규제 기조 속에서 정부 주도의 합리적 규제는 분명 어려운 지향점이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실제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현행법과 초안보다 진일보해야 한다. 민·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면 가능하리라 본다.

게이머 사이에서 유명한 말이 있다. '오락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게임할 땐 아무 생각 없이 게임만 하고 싶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