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19>레슨 프롬 삼성

추격형 혁신 모델. 개발도상국의 혁신 과정은 선진국의 거울 이미지다. 시작은 구닥다리 제품부터다. 뜯어 보고 다시 조립해 본다. 시행착오는 다반사다. 이렇게 비슷한 제품이 나온다.

이제 목표는 한 단계 높아진다. 그럴듯한 제품을 목표로 삼는다. 모방에도 제법 노하우가 생겼다. 분해하고 짜맞춰 본다. 여하튼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다음 개량하고 내 색깔을 입히면 된다. 이렇게 추격전은 선진 기술이 남긴 흔적에서 시작된다.

종종 한국형 혁신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의 숨은 요지는 명료하다. 일본형 혁신은 알고 있는데 한국 기업은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이즈음 되면 가슴이 뜨거워져서라도 뭐라도 답을 찾아야 한다. 어느 기업의 사례를 '레슨 프롬 삼성'이라는 부제를 달아서 들려줬다.

때는 1976년이다. 최고경영진 가운데 누군가 미국에서 전자레인지를 보고 돌아왔다. 엔지니어 추연수에게 개발 프로젝트가 간다. 아는 거라곤 없다. 이럴 땐 최신 제품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모델 제트 230. 최고 기업의 최신 제품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트 230을 뜯어본다. 일단 어찌 생겼는지는 알겠다. 물론 마이크로파를 만드는 마그네트론 튜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란 뜻의 신조어)이니 사들이기도 한다. 제대로 된 용접도 어렵다. 대충 납땜해서 모양만 맞춘 시제품이 나온다. 물론 전원을 켜자마자 첫 시제품은 녹아내린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겨우 작동하는 시제품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당장 생산 라인을 만들라고 한다. 경영진의 주문은 단 한 가지,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는 기업 금언도 한몫했다.

첫 주문은 파나마에서 온 240대였다. 그다음 미국 JC 페니에서 299달러에 맞출 수 있냐고 한다. 물론이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 주문은 월 1500~5000대, 그다음 7000대로 늘었다.

이즈음 GE에 경고등이 켜졌다. 일본 제품 탓에 점유율은 14%까지 떨어졌다. 거기다 상위 모델마저 턱없이 낮은 가격에 일본 제품이 나온다. GE 최신 공장마저 가격을 맞출 수가 없었다. 덤핑이라고 외쳤지만 실상 “단지 생산성이 높은 것일 뿐”이었다.

1983년 6월 GE는 삼성전자에 첫 주문을 낸다. 1만5000대였다. 그리고 1983년엔 연 75만대, 1984년엔 100만대를 각각 넘어선다. 1985년 5월 GE는 전자레인지 생산을 중단한다. 판매와 서비스만 맡고 생산은 모두 삼성에 넘긴다. 이후 스토리는 우리 모두 안다. 삼성 수원공장은 최대 생산공장이 된다. 한 해 550만대를 만들어 낸 적도 있었다.

굳이 이 사례만으로 한국형 혁신을 묻는 질문에 답할 생각은 없다. 다른 우리 기업들처럼 지금 삼성은 이때의 삼성이 아닐 터다. 그러나 이 사례는 한국형 기업의 성공을 설명하는 네 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첫째는 어헤드다. 항상 수요를 앞질러 생산을 생각했다. 둘째는 생산 강조였다. 일단 첫 제품을 만들어 내고 그다음 따라잡는다. 셋째는 규모의 경제다. 규모를 만들어 가격 경쟁력을 극단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넷째는 시장 맞춤, 즉 현지 기호에 철저히 맞추는 것이다. 여기에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는 원칙이 덧붙여졌다.
이건 우리 성장기의 한 단면이었을 뿐일까.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 혁신 원리로 남은 것일까. 일단 답이 됐다는 듯 끄덕이는 사람들 앞에서 확신에 찬 눈빛을 지어 놓고 본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19>레슨 프롬 삼성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